<열린마당> 계측기기산업의 국제경쟁력

李丙旻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책그룹실장

중국에 진출한 국내 건설관련 전문가들을 만나면 『중국이 마무리 기술·생산성·원가 면에서 경쟁력이 취약해 산업화가 늦어지고 있지만 설계나 측량·건설기술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당시에는 그 말에 내포된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으나 얼마 전 중국에서 개최된 과학기술정책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한 후 상해 계측기기공사 산하의 공장을 방문해 보니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가 됐다.

낙후된 설비임에도 불구하고 숙련된 기능공들이 정밀가 높은 택시미터와계측기기를 생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가올 21세기에는 환경오염도가 낮고 부가가치가 높은 반도체·정보통신·신소재·생명공학산업 등이 부상할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정밀측정기술과계측기기산업이 국가의 산업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란 판단 아래 선진 각국이기술집약적이면서도 부가가치가 높은 계측기기를 특화하고 새로운 기술개발에 민관의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후발개도국들도 저임금을 무기로 삼아 저가 보급형 계측기기 생산에 참여하는 등 계측기기 산업육성에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계측기기 산업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것으로 예상하고 기술개발에 나서고 있으나 아직 국내 계측기기 산업은 지난해 30억 달러(수입 35억 달러, 수출 5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발생시킨 대표적인 취약산업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은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5월까지 수출은 전년 동기대비33.2% 감소한 1억3천만 달러였으나 수입은 12억 8천만 달러로 11억 달러 이상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무역적자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 어떤 정책보다도 먼저 계측기기 산업육성책을 마련해야한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 계측기기 관련 대행 국책연구사업을 마련, 기술을축적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한편 단기간에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줄일수 있도록 집중적인 기술개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최근들어 新원리를 이용한 계측기기가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 연구개발기간및 기술수명주기 단축에 부응할 수 있도록 기술개발 동향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계측기기산업의 국제경쟁력이 뒤지는 것은 기술경쟁력이 약하고특히 고성능·고부가가치 고급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관련 기술과 정밀정확도 향상이라는 과제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계능력을 갖춘 계측기술자를 지속적으로 배출해야 한다.

국내 계측기기 시장은 5조원 규모를 넘고 있지만 이중 65% 가량을 수입에의존하고 있다.

기술 및 정보화사회로 이행하는 산업고도화 과정에서 국가적으로 요구되는정밀측정기술과 계측기기를 선진국에 의존하고 있다면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이라 할 수 있겠는가.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중국은 이제 잠에서 깨어나고있고 생산성개념과 자본주의적인 자세를 갖추게 되면 국제경쟁력이 크게 강화될 것이다.

주력산업에만 열중하던 경제정책에 의해 철저히 소외되어 왔던 기반산업인계측기기산업의 육성과 발전을 위해 더욱 의욕적이고 체계적인 육성정책과기술개발 촉진을 위한 지원방안이 제시되기를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