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에 이 기사가 연재되는 동안 여러근데에서 전화가 왔다. 대부분의 내용은 곳곳에 만연해 있는 「高비용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턱없이 높은 땅값과 고금리·고임금 등은 기업의 투자의욕을 감소시키는것은 물론 국제경쟁력 저하의 주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이야기였다. 여기에다공장 신·증설, 해외투자 등 인·허가와 관련한 정부의 규제는 타이밍이 중시되는 반도체산업의 발목을 잡는 동시에 해외 업체들이 국내투자를 기피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가장 먼저 표방한 슬로건은 「세계화」였다. 이를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업계 자율경쟁을 통한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겠다고 경제 관료들은 입이 닳도록 말했다.
그러나 결과는 말과 달랐다. 『규제핵심을 그대로 놓아둔 채 절차상의 한두건을 완화한 「눈가리고 아웅식」이 대부분이다. 정부는 입만 열면 규제완화를 외치지만 현재와 같은 건수(실적)위주의 관료체제하에서 실질적인 규제완화는 기대하기 힘들다.』(전자공업진흥회 한 임원)
심지어는 재계의 총수들이 이같은 정부의 행태를 비판한 것과 관련, 「괘씸죄」를 적용해 특정사업에 대한 인·허가 보류 및 세무사찰 등 오히려 종전보다 더 무서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지난해 모 재벌총수는 우리나라에서 반도체공장을 하나 짓는데 무려 1천개의도장이 필요하다는 표현을 썼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도 『정부의 산업정책 가운데 상당수가 급변하는 추세와는 상관없는 무조건식의 구태한 강요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특히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충고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독선적인 관료우위의 사고방식이 우리나라를 「규제왕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주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유럽 등 선진 각국에서조차 무상 부지공여 및 각종 세제혜택을 주며반도체공장 유치에 혈안이 돼있는 동안 1천개(?)의 도장을 요구하며 규제를하고 해외로 나가 싸우는 기업에 비싼 금리를 강요해 원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정책은 우리나라 말고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통상산업부가 반도체과를 폐지하고 그나마 현재 반도체 관련정책을 관할하는 전자부품과마저도 담당과장이 수개월째 공석이라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반도체는 국내 전체수출의 20%를 차지하는 그야말로중심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무과장이 자리를 떠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아직도 자리를 비워두고 있다는 사실은 당국이 최근 반도체가격 하락으로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며 호들갑을 떨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당국의 정책실무자들의 잦은 자리이동도 큰 문제다. 이로 인해 정책의 연속성이 사라지고 일관성도 없게 된다. 모든 대책과 대안이 몇년 후면 슬그머니 없어지고 엉뚱한 새로운 정책이 나오기 십상이다. 이럴때마다 업계는 지치고 나중에는 아예 포기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에서처럼 중장기 로드맵에 의한 발전계획은 나올 수가 없다. 입으로만이 아닌 비메모리 제품의 육성기반을 실질적으로 마련하기위해서는 해외신기술 확보와 함께 기술인력 육성을 위한 기술인프라 구축이중요한데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 진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조만간 벌어질 무한경쟁에 대비해 기업은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자」는 판이다. 하지만 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정책대안 마련에 앞장서야 할 관계당국은 정작 마인드는 바꾸지 않고 자리만 자주 바꾸는 형국이다.
『경제의 주체는 정부가 아닌 기업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한 업계원로의 말이 뼈저리게 들린다.
〈김경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