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CDMA 경쟁력 강화

조선 말기 선각자 홍영식은 개화파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와서 1882년에 郵程司라는 체신사업관서 설립을 주장했다. 그의 이같은 전기통신 근대화에 대한 노력은1884년근대 우편제도의 효시인 우정총국이 개설돼 우정사업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홍영식은 1883년 전권부대신 자격으로 미국에 건너갔을 때 통신분야의발전된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통신분야가 개혁돼야 한다고 주창했다.

우리나라의 통신이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미국은 우리나라에 영향과 압력을번갈아 행사한다. 좀더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통신분야만큼 우리나라가 미국의 시장개방 압력에 힘없이 무너진 사례도 드물다.

전화시설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본격적인 통신시설을 구축한 80년대에는국내 통신수요의 상당 규모가 미국 업체들에 의해 주도됐다. 미국은 90년대들어서면서 통신설비에 이어 통신서비스 분야까지 시장개방 압력을 가속화해그들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던 것이 사실이다.

미국은 최근 한·미통신협의회에서 정부 차원에서 논의할 수 없는 민간부문까지 시장개방 압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의 이같은 거센 압력이 통신의통상분야에선 영원한 약자인 우리로선 이에 대처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통신시장 개방문제에 있어서는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제 통신시장 개방은 「찬성론」과 「반대론」을 운위하는 선택의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선진국들의 시장개방에 얼마나 경쟁력을 갖고 대처하느냐 하는 대응의 문제이다.

우리가 경쟁력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길만이 최선의 선택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국산 전전자교환기인 TDX의 개발이나 얼마 전 상용서비스에나선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디지털 이동전화시스템 상용화는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CDMA 서비스가 상용화에 나선 지 반년 만에 가입자 10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시장개방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탄탄한 내수시장의 바탕 위에 이 분야의 국제경쟁력을 키우는 길밖에 별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