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어느 한적한 시골의 아침.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는 최군은등교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최군의 어깨에는 무거운 가방이 메어있지 않고손에 자그마한 손가방이 들려 있다. 정부에서 추진했던 교육정보화시책이 마무리되면서 모든 학과목이 책에서 CD롬 타이틀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학교 수업도 크게 바뀌었다. 1교시는 자연 시간으로 곤충들의 생활을 학습하는 시간. 선생님의 간단한 학습목표 설명이 끝난 후, 아이들은 자기 앞에놓여있는 PC에 CD롬 타이틀을 집어넣고 메인 화면에 표시되어 있는 3단원을클릭한다.
컴퓨터 모니터화면에는 우리나라의 곤충들이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움직이고 있다. 매미를 클릭하자 매미의 울음소리와 함께 3D화면으로 표현된 매미의 성장과정과 동시에 자세한 설명이 나오고 있다. 현재는 과목별로 CD롬 타이틀을 사용하지만 조만간 DVD롬으로 바뀌면서 모든 과목이 한장의 DVD롬으로 교체될 예정이다.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지금도 멀티미디어 PC가 보급되어 있는 학교라면충분히 실현 가능한 수업방식이다.최근 들어 교육환경이 멀티미디어 환경으로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예전의 학습지·테이프·비디오를 이용한 학습이멀티미디어 교육으로 바뀌고 있는 것.
멀티미디어 교육의 선봉장은 단연 CD롬 타이틀이다. A4용지로 30만장을 담을 수 있는 방대한 데이터 저장능력, 동영상 및 애니메이션 등의 화상과 CD수준의 고품질의 음성 그리고 텍스트를 이용한 다중 학습, 빠르면서도 편리한 검색기능, 무엇보다도 일방통행이 아닌 사용자와 상호대화를 통한 인터액티브 교육방식 등의 장점이 CD롬 타이틀을 미래의 교육매체로 자리잡도록 하고 있다. 또한 멀티미디어 PC의 급속한 보급확대, 책보다도 싼 타이틀 생산단가 등은 CD롬 타이틀이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게 만드는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CD롬 타이틀의 교육적인 활용가치가 높아지면서 이를 이용한 교육을 실시하는 학원도 선보이고 있다.
어린이에게 컴퓨터와 영어 등을 가르치는 학원인 「컴키즈」는 멀티미디어PC와 CD롬 타이틀을 이용해 어린이에게 영어와 컴퓨터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많은 유치원에서는 기존 교수방식인 학생과 선생님과의 1대1 교육이 아니라CDI를 이용한 다양한 학습을 하고 있다. 또한 어학전문학원인 일미일 영어학원에서는 어학 CD롬 타이틀을 이용한 멀티미디어 강좌를 개설해 많은 학생들로부터 호응을 받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정규교육과정인 초·중·고·대학과 전문학원에서도 CD롬타이틀을 이용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원대 부속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등은 별도의 멀티미디어 어학실을 구비하고 어학 CD롬 타이틀을 부교재로 이용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한양대학교와 서울대학교가 CD롬 타이틀을 이용한 어학강좌를 실시하고 있다.
CD롬 타이틀 활용은 교육 뿐만 아니다. 사학·미술·과학·건축·전자공학·의학·음악·법학 등 특정분야에 관련된 지식습득, 시뮬레이션을 통한 전문기술습득, 자료의 DB화, 회사 홍보용 등 수없이 많은 활용분야가 있다.
LG전자에서는 제품정보와 회사소개가 담겨 있는 CD롬 타이틀을 제작했으며삼성전자는 회사 홍보용 뿐만 아니라 전자제품서비스 매뉴얼과 반도체 규격이 수록되어 있는 반도체 매뉴얼도 제작해 해외 바이어에게 배포했으며 곧전자기술 전반을 교육할 수 있는 타이틀도 개발중이다.
이외에도 LG화학·해태상사·현대그룹·현대전자·현대정보기술·태평양·에이스 침대 등 많은 대기업들이 회사홍보를 위해 타이틀을 제작했으며 대웅제약은 연차보고서도 타이틀로 만들어 누구나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
관공서도 예외는 아니다. 공보처 해외공보관은 한국을 소개하는 CD롬 타이틀인 「A Window on Korea」를 제작했으며 문화체육부는 영어권 외국인들을위한 한국어 교재인 「Korean through English」를 타이틀로 개발해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자치단체 홍보의 중요성이 강조되자 서울시는 자체홍보용 CD롬 타이틀을 제작중이며 충청북도도 충청북도 1백주년을 기념하는타이틀 제작에 나섰다. 이외에도 많은 관공서나 연구소 등에서도 연차보고서, 세미나 자료 등을 CD롬 타이틀로 제작하는 추세라서 조만간 문서파일의자리를 CD롬 타이틀이 차지할 것이다.
이와 같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CD롬 타이틀이 국내에 소개된 때는 80년대 하반기로 알려지고 있다. 전문적인 용도로 일부 극소수에서 수입해 사용하다가 국내 제작진에 의해 CD롬 타이틀이 선보인 것는 지난 91년. 큐닉스컴퓨터가 전자성경인 「성경라이브러리」를 그해 6월에 발표했고 이어서 삼성전자가 영어학습 타이틀인 「다이나믹 잉글리시」를 9월에 상품화하여 우리나라도 CD롬 타이틀 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알렸다.
국내 제작사들의 타이틀 출시 현황을 보면 지난 91년에 2종, 92년에 3종으로 조심스럽게 선보이다가 93년에 58종, 94년에 2백31종, 95년에는 4백59종으로 해가 거듭될수록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올 5월까지 국내 출시 타이틀 수는 총 3백13종으로 처음으로 수입타이틀수3백9종(공륜자료)을 넘어섰고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국내 제작 타이틀 종류는 7백종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루에 평균 2종 정도가 출시되고 있는 것.
타이틀 시장규모도 94년에 총 4백억, 95년 7백억, 96년에는 1천억원 정도의 시장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중 전체 타이틀 시장의 교육용 타이틀의 비율은 30%내외로 올해 국내 총시장규모 1천억원 중 3백억원 정도가 교육용 타이틀 시장으로 분류되고 있다.
향후 교육용 타이틀의 시장성장률도 오는 2000년까지 60% 이상의 고성장을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2000년에는 약 2천억원규모(총 6천6백억원)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타이틀 제작사들도 이같은 시장확산에 따라 너도나도 타이틀 시장에 뛰어들어 지난 92년 20개사에서 93년 50개사, 94년 80개사, 95년 에는 1백50개사로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올 들어선 신규업체의 증가보다는 타이틀 업체들이내실화쪽으로 가닥잡고 있다.
CD롬 타이틀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업체들의 면면을 보면 국내 굴지의 대기업부터 3, 4인이 모여서 제작하는 영세업체까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삼성과 LG는 2개 계열사가 독립적으로 타이틀 사업에 참여하고 있을 정도로영상산업과 관련된 멀티미디어 사업을 중시하고 있고 이 두 회사외에도 현대·대우·선경·쌍용·두산·동아·진로·미원 등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들이 미래를 내다보고 타이틀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타이틀에 담을 소스를 보유하고 있는 방송업체 및 출판사들도 필연적으로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올해 들어 신규사들의 타이틀 사업 참여와 기존업체의 사업강화가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는 「원소스 멀티유즈」라는 방송업체나 출판업체의 세계적인 경영추세를 반영하는 것으로 관련 업계에서는 풀이하고 있다.
방송 3사와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 공급업체(SO)인 G TV외에 새로이 동아TV·투니버스 등의 SO가 타이틀 사업에 참여했으며 지역 케이블 방송인 서초케이블 방송의 방송프로덕션인 삼우컴앤컴도 타이틀 사업에 뛰어들었다.
KBS는 타이틀 사업강화를 위해 LG소프트웨어와 포괄 협력을 체결해 방송사의 사업추진 방향을 짐작하게 했다. 출판사로는 대한교과서 주식회사·보리출판·다락원 등이 새로이 참여했고 삼성당·중앙출판사 등도 타이틀 출시를준비하고 있다.
국내 타이틀 시장이 이처럼 성장하기까지는 대기업보다 전문 타이틀 제작업체들의 공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 전문 제작업체들은 국내 타이틀 시장 초창기부터 참여하여 시장을 주도해 왔고 자기만의 장기 분야를 특화시켜국내 타이틀 시장에서의 지명도와 입지를 구축했다.
유아교육용과 노래방 타이틀을 전문적으로 제작해 온 세광데이타테크, 어학 학습용 타이틀 전문 제작업체인 서일 시스템, 백과사전 타이틀을 개발한계몽사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전문업체와는 달리 영세 제작업체도 뛰어난 기술력, 톡톡 튀는 아이디어, 틈새시장개척 등으로 나름대로의 지명도를 갖고 있는 업체들도 있다.
신소프트웨어 대상을 수상한 「색깔을 갖고 싶어요」의 푸른하늘, 학과 교육용 타이틀인 「리틀 에디슨」으로 올 상반기 최대의 히트상품을 낸 한국프로그램개발원 등이 바로 그 회사들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소스싸움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기술력·아이디어와 함께 알찬 내용이 있어야 타이틀로써성공할 수 있는 시장이 된 것이다.
올해 말까지 멀티미디어 PC보급대수 2백만대, 한해 17조의 사교육비가 지출되는 교육대국에서 차세대 교육매체로 부상하고 있는 CD롬 타이틀 시장을 둘러싼 업체간의 경쟁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유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