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유통의 요람 전자상가 지상여행 (10)

대구 교동상가

6.25가 발발한 지 어언 45년이 지났다. 전쟁의 포화 속에 끝없는 피난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을 그날의 참상이 눈을 감고 생각해 보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렇게 많은 피난민이 남쪽으로 내려갔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위 「꿀꿀이 죽」이라는 단지 생명연장의 음식으로 끼니를 떼웠다.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지금의 부산 국제시장과 대구 교동시장은 그때 부터 시작됐다. 자연스레피난민이 모이고 필요한 물품을 교환하기도 하며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헤매던 곳이다. 사람이 들끓다보니 대구 교동시장은 서울의 명동처럼 대구 최고의 중심상권이 되었다. 특히 대구 교동시장은 그 면적조차헤아릴 수 없을 만큼 광활한 부지를 차지하고 대구·경북지역의 최대상권을자랑하고 있다.

현재 교동시장은 의류·식료품·전자·생활용품 등 취급하지 않는 품목이없을 정도의 종합시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교동상가라고 함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기·전자 전문상가가 아닌 종합상가다. 그 중에서 가장 큰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전기·전자부문이다. 약 1천여개에 달하는 점포들이 대로변과 골목 골목을 빼곡히 메우고 있다.

대구 교동상가가 전기·전자전문상가라는 인식을 갖게한 것은 불과 13여년전의 일이다. 컴퓨터란 말이 생소하게 들리던 시절, 지금의 교동상가 골목은가전을 취급하는 점포 몇개가 고작이었다. 30대 초반이라면 누구나 다 한쪽기억에 남아 있을 「전파상」 수준이었다. 고장난 TV나 라디오를 고쳐주는것이 주된 일이었다.

그러던 것이 83년 「8비트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전자전문상가로서의 교동상가가 등장하게 됐다. 컴퓨터가 귀하던 시절이라 수요도 많지않고 따라서 점포도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의 숫자였다. 「8비트 컴퓨터 시대」가 끝나고 「XT급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 숫자는 하나 둘 늘어났다. 이후「286」 「386」 「486」의 시대를 맞으면서 명실상부한 전자전문 교동상가가 탄생하게 됐다.

컴퓨터의 발달사가 곧 교동상가의 발전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급작스레발전한 컴퓨터의 역사만큼 교동상가도 정신없이 커져왔다. 그래서 교동상가의 외형적 구도를 보면 시장통 일반 가정집을 개조한 점포가 대부분이다. 단층 건물에 다닥다닥 붙은 점포가 「이 곳이 첨단 제품을 판매하는 곳인가」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컴퓨터 점포가 입주할당시 대로변은 이미 가전점포들이 다 차지하고 영세한 컴퓨터점포들은 대로변의 한쪽 골목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고 컴퓨터 관련업체의 한 관계자는말한다.

이렇게 형성된 컴퓨터 관련 점포수만 1백여개. 한창 호황일때는 1백30여점포가 넘었다고 한다. 여기에 오디오·부품·전기기자재·공구·게임기 점포 등을 합하면 줄잡아 1천여개의 점포가 밀집해 있다. 지방상가 중에서는보기드문 대형상가임에 분명하다.

교동상가는 여러 부문의 점포가 단층으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기 때문에 그면적 또한 광활하다. 교동상가라고 불리우는 곳은 실제로 교동만이 존재하는것은 아니다. 전체 상가가 교동·완전동·문화동·동문동 등 여러개의 동으로 형성되어 있다. 어디부터 상가이고 어디가 끝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이다. 여기 상인들도 『대강 시청앞에서부터 시작돼 교동시장에서 끝난다』라고 얘기할 정도이다.

그러나 교동상가 입점업체의 상인들은 교동상가가 대구·경북의 전자유통핵심상권임에도 불구하고 더딘 발전에 대해 불만이 많다. 먼저 대구 중심이라는 위치가 불편한 주차환경을 개선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로 존재하고 있다. 자가용이 일반화된 추세에서 고객의 주차공간 확보는 무엇보다 시급한일임에도 뾰족한 묘안이 없다. 결국 30분당 1천5백원씩이나 하는 사설 주차장을 이용해야 하는 고객들에게 이곳 상인들은 못내 미안하다. 또 대구시 중심지역인 관계로 대형 건물안에 집단상가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도 발전의 장애라고 말한다. 한 건물에 전문적인 점포들만이 형성되어 있을 경우 고객의쇼핑편의와 관리의 일원화를 기할 수 있음에도 현실은 이를 실현할 수 없게돼있다.

이를 위해 교동상가는 상우회를 주축으로 북구 산격동과 검단동 일원에 초대형 유통단지를 건설 가전제품관을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 물론 가전제품관은 종합유통단지의 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그 연면적은 4만7백평에 달하고 주차용량도 1천4백대에 달한다. 이곳 상인들은 이 상가가 동양최대의 전자유통단지가 될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현재 기반조성공사가 마무리 단계로 97년말께 완공이 가능할 것으로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특히 교동상가 상인들은 이곳 가전제품관이 설립되면 경부고속도로를 잇는주요 거점으로 물류를 원활하게 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 이남과 부산 이북을 포섭하는 「샌드위치 상권」으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교동상가는 치밀한 홍보전략을 펴고 있다. 우선 가전제품관의 설립 이전에 교동상가의 「얼굴알리기」를 위해 상우회를 중심으로 라디오 광고를 실시하고 있다. 점차 가전제품관으로의 이전이 다가오면 새로운홍보전략으로 「이미지심기」를 위해 TV광고도 계획하고 있다. 고객서비스차원에서 상우회를 주축으로 「공동AS」를 실시하고 있으며 현재는 각 점포마다 분산되어 있는 특성으로 실시하지 못했던 이벤트도 가전제품관의 입주와 더불어 활발하게 펼칠 야심을 갖고 있다. 강력한 「홍보 드라이브」정책이 교동상가가 앞으로 펼칠 미래판매전략이다.

전쟁이 포화속에서 생존을 위해 생겨났던 대구 교동시장은 지금 보다 화려한 미래를 위한 단꿈을 꾸고 있다. 옹기종기 서로 얼굴을 맞대고 영업하던끈끈한 유대관계로 힘을 합쳐 전국적인 아니 세계적인 「교동상가」로 거듭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경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