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공학을 접하면서 가장 자주 만나는 단어 가운데 하나는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micro electronics)다. 이는 60년대부터 80년대 말까지 전자시스템에 사용돼온 반도체 집적회로 내부 소자들이 수백에서 수의 크기를 가지는데서 연유한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 반도체 소자 크기는 계속 작아져 이하 크기의 소자들로 구성된 대규모 집적회로가 양산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2백56Mb급 이상의 D램 셀에 쓰이는 트랜지스터의 크기는 4분의1 이하다. 최근에는 비록 연구소 레벨이기는 하지만 채널 길이가 10분의 1이하인 MOS 소자들이 출현하고 있다.
따라서 10분의 1는 1백이기 때문에 현대 전자공학은 본격적으로 나노 일렉트로닉스(nano electronics)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즈음 나노 일렉트로닉스 연구의 핫이슈 가운데 하나는 양자점(quantum dot)에 대한 연구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양자점이란 전자를 가두어둘 수 있는 점 크기만큼 작은 공간을 의미한다.
이때 이 점의 크기는 매우 작아 점 속에 갇힌 전자들이 가지는 양자 에너지 준위의 크기가 비교적 커지게 된다. 이 경우 점 속에 갇힌 전자가 가지는많은 물리적 현상은 양자역학을 가미해야만 설명할 수 있다.
원래 반도체 내부 전자의 운동은 양자 역학적이다. 하지만 크기가 큰 소자의 경우 반도체 내부 전자들의 운동은 고전적인 평균 개념에 바탕을 둔 이론들로 설명이 가능하다. 양자점 내부의 전자의 운동은 이러한 고전적인 이론들로는 설명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양자점의 역사는 60년대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금이나 은등 금속을 증착할 때, 증착속도를 아주 늦춰 짧은 시간 동안 증착하면 평탄한 금속 증착면 대신 아주 작은 크기의 「그레인(grain)」들이 생기는 것을알아냈다. 또 이들 금속 그레인을 통한 전류전도현상을 연구했다. 그후 양자점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하지만 80년대 초반부터 이하 크기의 반도체 집적회로 기술이 급격히 진보하면서 반도체 구조를 이용해 전자들을 2차원 평면에, 1차원 선에, 더 나아가 0차원 점에 가두는 방법이 급격히 발달했다.
또한 이들 구조를 이용해, 가두어진 전자들의 전기적, 광학적 성질에 대한연구를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양자점의 제작연구도 엄청난 발전을 거듭했다. 현재는 원자 한층한층의 성장을 제어할 수 있는 결정성장방법을 이용해 10(원자 20여개가 늘어선 길이) 지름의 양자점을 만들 수있게 됐다. 이 정도 크기면 거의 인공분자(artificial atom)로 불릴 만하다. 앞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따라야 하겠지만 인공원자 제작도 그리 먼훗날의일만은 아닐 것이다.
결정성장기술을 이용한 양자점 제작 연구의 선두 주자들로는 일본 동경대의 아라카와 교수 그룹, 미국 노틀담대의 머츠 교수 그룹 등을 들 수 있다.
현대 반도체소자 및 회로기술에 있어 양자점의 중요성은 크게 두 가지로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반도체 레이저에의 응용이다. 양자점의 고유한 양자준위를 이용해 새로운 파장의 레이저를 만들 수 있다. 또한 양자점 내에서는전자들이 가지는 상태밀도가 매우 높아, 이를 이용하면 고출력 레이저 제작도 가능하다.
하지만 양자점 레이저는 아직 실제로 성공하지 못하고 있고 많은 기술적어려움을 극복하는 단계에 있다.
둘째는 메모리 및 논리회로에의 응용이다. 양자점은 전자들을 바깥 세계와차단하기 때문에 양자점과 바깥 세계의 전기전도는 오직 전자의 터널링 현상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때 양자점의 포텐셜 에너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외부게이트를 사용, 양자점과 바깥 세계간 전자 하나하나의 터널링을 제어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단일전자 트랜지스터(single electron transistor)의 원리다.
단일전자 트랜지스터를 이용한 메모리 및 논리회로에서는 전자 하나의 변화가 논리레벨을 결정하도록 할 수 있다. 현재 2백50Mb급 D램 셀에서 논리레벨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약 10만개의 전자 이동이 필요하다. 10 이하 크기의 양자점을 이용할 경우 테라비트급(1테라비트는 1기가비트의 1천배) 이상의 집적도를 이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단일전자 트랜지스터는 86년 현재 미국 뉴욕 주립대학 교수인 리카레프가처음 제안했다. 그후 80년대 후반에는 저온에서 동작하면서 크기가 비교적큰 단일전자 트랜지스터들이 만들어졌고 이들이 가지는 물리적 현상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다.
90년대에 들어오면서 단일전자 트랜지스터에 대한 연구는 새로운 단계로넘어가게 된다. 이때부터 히타치, NTT, NEC, 도시바 등 일본 유수 반도체회사들과 국영 연구소가 테라비트 집적을 위한 단일전자 트랜지스터 연구에뛰어들게 되었다.
93년 일본 히타치의 연구진들이 상온에서 동작하는 폴리 실리콘 단일전자트랜지스터 제작에 성공했고, 올해에는 4×4 단일전자 메모리 어레이를 발표했다. 또한 NTT의 연구진들은 지난해 SOI(Silicon On Insulator) 웨이퍼를산화하는 기법을 이용한 상온동작 단일전자 트랜지스터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SOI나 폴리 실리콘을 이용하는 기법은 공정상 우연히 얻은 작은 양자점을 이용하고 있고 아직 재현성이 부족하다. 보다 재현성이 우수한 방법은 AFM(Atomic Force Microscope)이나 STM(Scanning Tunneling Microscope)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지난해 일본 ETL(Electrotechnical Lab) 연구진들이 성공하기도 했다.
최근 단일전자 트랜지스터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퀀텀 셀룰러 오토메이트(quantum cellular automata)라 불리는 회로제작기법이 제안됐다. 양자점의크기가 10보다 훨씬 더 작아 전자를 한두개만 가질 수 있을 때, 양자점내의전자 배열상태가 변화하면 전체 양자점의 에너지가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에너지의 차이로 논리 레벨을 표시할 수도 있다. 또 전자의 터널링이 없이도 전자의 배열상태 변화가 인접한 양자점들로 전파될 수 있다. 이방법을 이용할 경우 파울리의 불확정성의 한계에 거의 근접하는 저 에너지초고속의 논리계산을 할 수 있다. 아직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되겠으나, 이것이 성공할 경우 손톱크기 만한 대용량 슈퍼컴퓨터의 출현도 가능할 것이다.
양자점 및 단일전자 트랜지스터에 대한 국내외 연구동향을 보면 미국기업의 경우 단기간에 사업성이 있는 주제에만 연구비를 투자하기 때문에 인텔이나 모토롤러 등 주요 반도체 회사들이 아직 이 분야의 연구에 대해 관망하고있는 상태다. 하지만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서는 이들 분야에 대한 기초 연구가 활발하다.
일본에서는 80년대 후반부터 통산성, 기업 컨소시엄 등의 출연하에 10년이상의 장기 연구과제로 단일전자 트랜지스터나 양자점, STM 등에 대해 연구를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특히 히타치, NEC, 도시바 등 유수의 반도체 회사들이 이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팀을 만들어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많은 대학과 연구소의 연구진들이 단일전자 트랜지스터의 연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수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테라비트급 메모리, 손톱 크기의 슈퍼컴퓨터 등은 비록 화려한 미사여구같이 들릴지는 모르지만 모두 상당히 합리적인 실험 데이터와 이론에 근거해나온 예측들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연구는 모든 프론티어 기초 연구에서와 마찬가지로 항상 실패의 위험을 안고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의 노력과 엄청난 시간 및 돈의 투자 없이는 단지 공상으로 끝날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또한 수십년이 지난 후의 메모리 칩이나 슈퍼컴퓨터는 현재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