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터 분야에서 팽팽한 시장경쟁을 벌여온 삼보컴퓨터와 한국휴렛팩커드가 라이벌관계를 청산하고 「적과의 동침」을 선언했다.
삼보컴퓨터와 한국HP는 삼보 본사에서 양사 대표이사가 참석한 가운데레이저프린터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이달말부터 삼보컴퓨터 대리점을 통해 「트라이젬/HP 페이지젯400」이란 제품을 판매할 방침이라고 20일 공식 발표했다.
이번 전략제휴에 따라 삼보는 가격경쟁력과 품질이 뛰어난 HP의 제품을안정적으로 공급받게 됐으며 HP는 전국에 산재한 3백50개의 삼보대리점을활용, 유통망을 대폭 보강하고 매출 신장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삼보와 HP는 지난해 국내 프린터 수요의 65% 이상을 공급했으며 특히 주력 제품군인 잉크젯 분야에서는 국내 수요의 80%에 육박하는 시장점유율을기록해 프린터 업계를 사실상 주도해 온 양대 메이커로 공인받고 있다.
관련업계는 국내 프린터업계의 선두경쟁을 벌여온 양사가 전략제휴 관계를맺게된 직접적인 원인은 올들어 시장점유율이 크게 떨어져 후발업체에게 시장주도권을 빼앗길 위기에 몰렸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또 엡슨과의 결별에 대비한 삼보의 공급선 다변화 전략도 주요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삼보와 HP가 잉크젯 분야에서 80% 가량의 제품을 공급했지만 올들어 삼성, 큐닉스 등 후발업체들에게 밀려나 점유율이 55% 정도로 크게 떨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레이저 분야에서는 HP가 10%, 삼보가 2∼3%에 불과해 판매가 극히 저조한 실정이다.
관련업계는 이같은 추세가 어느정도 지속된다면 국내 5대 프린터 메이커의판매량 순위에서 HP와 삼보가 2∼3위로 밀려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 올초 일본 세이코엡슨사가 엡슨 독자브랜드로 한국시장 직접진출을 시도함에 따라 삼보컴퓨터와 엡슨 간의 관계가 급속히 냉각된 것도 이번 HP와의 전략제휴관계를 성사시킨 주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삼보는 공식적으로 엡슨과의 관계는 당분간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잉크젯 프린터를 포함한 스캐너, 부품 등의 공급선을 엡슨에서 HP로 옮기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보는 또 HP로부터 엔진을 공급받아 자체 생산라인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는 방안과 PC분야의 OEM 및 부품 공급방안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히고있어 엡슨과의 결별설과 이번 HP와의 전략제휴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있다.
프린터 전문가들은 『삼보와 HP의 전략제휴는 시장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고육책에서 나온 방안』이라고 분석하고 『레이저프린터 분야에서는 엔진생산업체인 삼성과 LG를 제치고 선두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감안하면 이번 제휴가 양사가 잉크젯 분야를 주도하기 위한 공동판매전선을구축하려는 예비조치임이 분명하다』고 분석하고 있어 주목된다.
<남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