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전국단일통화권 망상

金相郁 충북대학교 경영정보학과 교수

정보통신부의 전국 단일통화권 추진계획 전면 유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이를 후발 통신사업자의 존립을 위한 일방적인 조치라는 시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에 필자는 이같은 상황의 공정한 판단을 위해 전국 단일통화권 시행에 따른 몇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 전국 단일통화권을 지지하는 측은 대개 노르웨이, 호주, 일본의 사례를 들어 지역번호 광역화가 마치 세계적인 추세인 양 유도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선 노르웨이는 인구 4백50만명, 전화대수 2백40만대인 인구과소국가로 단일통화권이 설득력을 갖지만 국토가 좁고 인구가 과밀한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호주와 일본, 영국 또한 각각 2천여개의 통화권, 5백70여개의 단위요금구역(Message Area), 6백30여개의 과금지역으로 세분돼 있다. 특히 미국은 1백40여개의 지역번호를 작년 7월부터 7백84개로 늘렸다. 전국 단일통화권과 그중간단계인 시외전화 광역화가 세계적 추세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둘째 전국 단일통화권이란 전국을 단일요금화하는 것으로 시내전화요금(3분당 40원)의 인상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시내통화율이 시외통화율보다 2∼3배 많은 현재의 전화이용 패턴을 볼 때 전국 단일통화권제도는 시내전화이용이 많은 일반국민이 시외전화를 많이 이용하는 기업체의 비용을 떠안게되는 문제점을 갖는다. 또 시내전화 요금의 인상은 컴퓨터통신의 활성화를저해, 정보사회 정착에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아울러 전국 단일통화권의 실시로 지역번호가 없어지면 다이얼링이 편리해진다는 주장에도 모순이 있다. 3자리 국번은 최대 수용가능한 가입자가 8백만에 불과하므로 지역번호를 없애는 대신 4자리 이상 국번으로 변경해야 하며 특히 국번호가 2자리인 중소도시와 농촌 이용자들의 불편 또한 크게 증가한다.

셋째 기존 번호체계의 대폭적인 수정이 불가피해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전환비용이 요구된다. 즉 번호변경에 따른 사업기회의 상실과 연락두절로 인한혼란은 물론 인쇄물의 내용변경과 재홍보에 따른 추가비용 및 관공서, 은행,기업, 학교 등의 DB 갱신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기존번호 앞에 단순히「1」을 추가하는 간단한 변경을 하는 데도 약 30억 파운드(3조6천억원)라는천문학적 비용이 들었던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 모든 비용은 결국 국민이 부담하게 된다.

넷째 시외전화 광역화나 전국 단일통화권제도를 시행하고 경쟁을 도입하지않으면 통신시장 개방을 지연시킬 수 있는가.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것이다. 시내통화료는 인상되는 반면 시외통화료는 인하되는 상황이 불가피해지므로 시내전화시장의 매력이 상승하게 되면 결국 사랑방 지키려다 안방인 시내전화 시장을 내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외전화 광역화계획은 독점체제에서 한국통신이 과거 10년간추진해 온 것으로 세계적으로 경쟁원리가 도입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더이상 국가정책이 될 수 없다. 시외전화 광역화 계획은 이용자 및 타 사업자,관련기관 등 이해당사자들의 합의와 조정을 거치지 않은만큼 지배적 사업자가 제시하는 한가지 안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결론적으로 지역전화번호 체계의 변경은 향후 30년 앞은 내다보고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 등 정치, 사회, 경제적인 변화가 생길 경우 번호체계의 전면 재조정에 따른 막대한 혼란과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는 우를 또다시 범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통부가 내린 이번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기본통신협상에 따른 98년 대외개방의 본격화에 대비해 국내 통신사업자의 체질을 개선하고 국제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최종 수혜자인 국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중장기 국가전략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받아들여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