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업체들이 제품 기획단계에서 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점은 자본의 영세성과 조직의 취약성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시장 기반이 열악하다 보니 소프트웨어업체들이 자본이 영세할 수 밖에 없고 조직을 재정비할여유가 없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넷스케이프 등 미국의 대부분 업체들이 풍부한수요기반과 인력을 바탕으로 조직화된 기업구조를 갖고 있는데 반해 국내 업체들은 열악한 시장환경에서 오로지 몇몇 경영자와 개발자의 판단에 의존해제품을 기획하고 개발해서 판매하는 전근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것이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일부 개인의 능력에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이 일부 개인이란 기업의 창업자이자 개발자 역할까지를 겸하고 있는 대표이사 사장을 말한다. 대부분의 대표이사들은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기획의 전권을 쥐고 개발방향을 일일히 지시한다. 뿐만 아니라 제품이 개발돼 나오면 마키팅을 수립하고 영업상황을점검하기도 하며 필요할 때는 자금 조달을 위해 직접 금융권을 찾아 다니기도 한다.
실례로 올초 대농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한메소프트의 경우 이창원사장이 혼자서 기술 동향을 파악,제품 개발 방향을 정하고 직접 개발에도 관여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사장은 대농그룹의 자본까지 유치함으로써 그야말로 1인 다역의 「수퍼맨」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핸디소프트의 안영경사장은 회사에 아예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일을 해야할 정도로 과중한 업무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한글과컴퓨터의 이찬진사장도 약간의 정도 차이는 있지만 「스타 사장」에 대한 의존도가 심한 것은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국내 소프트웨어업체들이 첨단산업을 이끌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내부를 들여다 보면 기업 조직과 운영형태는 아직도 구멍가게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소프트웨어업체들이 소수 개인의 능력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것은 열악한 국내 시장환경에서 영세한 자본을 갖고 살아 남으려는 생존경쟁의 일환이기도 하다. 영업도 해야 되고 심한 경우에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 다녀야 하고 결국 제품 기획과 개발에서 부터 자금조달 및영업에 이르기 까지 소수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영세한 자본을 갖고 개인 능력에 의존하다보니 처음부터 해외 시장으로의진출은 엄두도 못내는 것은 당연하다. 국내 시장을 겨냥한 제품을 기획하고개발하는 것이 소프트웨어 업계의 현실이자 능력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나타나는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통상적으로 현대 조직사회의 가장 커다란 특징인 분업과 협업을 바탕으로한 전문성과 조직성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보수집 및 의사결정과정에서의 병목현상이라고 할 수있다. 기업들은 나름대로 제품기획 부서를 갖고 있지만 실제 시장의 흐름을파악하고 결정을 내리는 일은 최고경영자의 몫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업체 사장들의 경우 영업, 자금조달 등 눈앞에 닥친 현안이수두룩해 정작 기업의 미래가 달린 제품의 기획 방향을 충분히 생각해볼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개발자 출신의 사장을 중심으로 창업한 기업들에 닥치는 문제는 제품 초기기획단계 외에도 업그레이드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단계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업그레이드 역시 사장과 소수의 초기 개발자들에게 의존하게 되는데 만약, 원래 개발자 중 일부라도 회사를 떠나게 되면 제품의 근본적인 업그레이드는 엄두도 못내고 상황에 따라 임시 방편으로 기능을 보완할 수 밖에 없게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소프트웨어업체는 사장이 기업전반적인 모든 활동을 지휘하고 있기 때문에 조직적인 체계를 기대하기 어렵다』며『기업의 운영은 최소한 개발, 경영, 영업 등으로 3분화시키고 최고경영자는장기적 전략을 책임지며 각 전담조직은 맡은 바 업무만 진행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업계의 성공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미국의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스사는 개발과 경영을 분리헤서 업계 인터넷 분야의 패권을 거머 쥔 대표적인 경우이기도 하다. 넷스케이프는 인터넷이 급부상하며 컴퓨터업계의총아로 떠올랐지만 실제 고속성장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때는 당시 실리콘그래픽스의 클라크회장을 최고경영자(CEO)로 영입, 개발과 경영을 철저히분리하고 기업의 체계를 갖추면서 부터였다.
10년 가까운 역사를 갖고도 개발과 경영, 자본을 분리시키지 못한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에게는 남의 집 잔치일 뿐인 것이다.
<함종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