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특집] CDI의 세계..TV서 구현하는 멀티미디어

멀티미디어라는 이름이 아주 생소하던 80년대 후반, 콤팩트 디스크(CD)를기반으로 한 새로운 매체가 네덜란드 필립스에서 발표되면서 가전업계에 일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컴퓨터와 가전제품이 합쳐진 새로운 개념의 멀티미디어기기인 CDI(Compact Disc Interactive:대화형CD)라는 제품이 등장한것이다.

지난 86년 필립스와 일본 소니 두 회사는 그림, 음성, 문자, 도형, 프로그램을 디지털 데이터로 종합편집한 뒤, 기록방식을 담은 그린북에서 CDI의 공동규격을 발표함으로써 상품화의 길을 열었다.

지금이야 멀티미디어라는 말을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지만 그 당시만해도 이 말은 전혀 생경한 말일 수밖에 없었다. 겨우 PC가 조금씩 소개되던 시절이던 만큼 멀티미디어기기인 CDI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낮을 수밖에없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무관심과는 달리, 이때만해도 CDI는 가장 앞선 광미디어라는 격찬을 전문가들로부터 들었다. 미국 플로리다대학의 포레스트 교수는 『CDI 기술은 5백60년 전의 구텐베르그 활자 발명과 같이 우리들이 보관하고 배포하며 검색하는 미디어를 변화시킬 혁신적인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초창기부터 세계 미디어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 CDI는 분명히 최첨단 멀티미디어 기기임에는 틀림없었다. 기존의 TV방송, VCR, 영화 및 기타매체처럼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과는 달리 CDI는 마치 사용자가기기와 대화하듯 조작해 광디스크에 수록된 정보를 전달받는 차세대 멀티미디어기기의 하나로서 뛰어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뛰어난 평가를 받은 CDI는 상품화 면에서 전혀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 지난 91년 10월 필립스사가 미국에서 첫 판매에 나서기 시작한 이후 일본 업체들의 미온적인 지원으로 인해 당초 기대와는 달리 시장형성에 실패했다. CDI가 필립스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데 따라 상대적으로일본 전자업체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즉 필립스는 CD의 경우를 생각하고 라이선스 보호에 치중한 나머지, 사업초기부터 경쟁사들을 견제하는 등 심각한 오류를 범하기 시작했다. 필립스의독주에 불만을 품은 일본 업체들은 규격참여를 포기하고 CDI를 외면한 것이다.

지난 93년 1월 액정TV를 장착한 휴대형 CDI를 생산한 일본의 소니사와 마쓰시타전기는 이 사업 자체를 중단하는 등 대부분의 일본 업체들이 CDI보다는 비디오 CD에 상대적으로 주력하고 있다.

여기에다 게임기 등을 중심으로 각종 멀티미디어 기기들이 쏟아지면서 상대적으로 CDI는 대중성에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CDI의 수요는 현재 유럽지역과 한국을 중심으로 일고 있을 뿐 주시장인 미국에선 제대로 판매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어서 전세계적으로 보급대수가불과 15만대 수준에 불과하며 향후 수요전망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재 일본 업체들의 미온적인 사업전개로 인해 궁지에 몰린 필립스는 LG전자와 전략적인 제휴를 통해 이 분야 마케팅에 신경을 쓰고 있을 뿐이다.

세계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CDI는 국내 시장에서도 어렵기는마찬가지다. 지난 93년 5월 LG전자가 정지화면과 부분동화상이 되는 제품을출시하면서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SKC, 삼성전자, 필립스, 롯데 등 오디오업체들이 이 제품의 뛰어난성능에 관심을 갖고 이 제품의 사업화를 서둘렀으나 결국 사업 초기단계에손을 떼고 말았다.

현재 LG전자만이 국내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인지도를 획득하기 위해 LG전자는 40만원대의 보급형 제품을 내놓고 유치원 등 교육용 시장을 집중공략키로 하고 회원제 도입과 이 분야의 타이틀 개발에 신경쓰고 있다.

LG전자의 백명원 부장은 『뛰어난 제품성능에 비해 일반소비자들의 관심을끄는 데 실패해, 많이 보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이 제품은 교육용 기기로 활용하는 데 적합하기 때문에 점차 교육용 시장을 겨냥,마케팅을 전개하면서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CDI의 국내 수요는 지난 95년 3만여대를 시작으로 올해 안에 5만대 가량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기술적인 면보다는 마케팅의 잘못으로 세계 시장에서 실패했지만 CDI의 상품화 여지는 아직도 남아 있다. 그만큼 기술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CDI는 영상압축기술을 이용, 6백40MB에 이르는 방대한 정보를 디스켓에 수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존의 CD, CDG, CDEG, 포토CD, CD롬 XA 등을 모두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의 용도에 따라 CDI는 회사홍보 및 상품광고 등 업무용을 비롯해 백과사전, 인명사전 등 전자출판과 어학 등 교육, 취미, 게임, 가라오케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

또한 CDI는 VHS 비디오테이프에 상응하는 음질과 화질을 가진 동화상을 재생할 수 있어 영화감상도 가능할 뿐 아니라 컴퓨터칩을 채용, 홈뱅킹과 텔레마케팅과의 접목도 가능한 상품이다. 특히 CDI와 인터네트의 연결은 CDI의활용을 어디까지 넓힐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95년 10월 영국 CD 온라인사는 세계 최초로 TV 인터네트 서비스를 개시했다. 이 TV 인터네트 서비스는 가정의 거실에도 인터네트가 침투할 수 있도록 해 사용자가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통신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터네트의 보급에 일조했다.

종래 PC를 통한 인터네트 접속에서는 네트워크의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지역 또는 국가에서는 인터네트를 활용할 수 없었지만 CDI를 이용한 TV 인터네트 서비스는 이같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했다.

CDI를 이용한 인터네트 서비스는 6백50MB라는 방대한 용량을 저장할수 있는 CD에 갖가지 다양한 음악과 효과, 이미지, 동화상 등의 데이터를 수록해놓은 후 신속한 온라인 매체를 이용해 하이퍼텍스트로 연결, 언제든지 재생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재생하기 위해 기다리는 지루함, 낮은 품질등에 실망할 필요가 없다.

이같은 장점으로 말미암아 영국에서 시작된 CDI 인터네트 서비스는 최근일본과 한국에서도 동시에 선보이면서 CDI는 점차 활로를 찾아 가고 있다.

한국에서는 LG전자가 CDI를 이용한 인터네트 관련제품의 판매와 함께 인터네트 서비스까지 개통했다. LG전자는 데이콤의 전문 인터네트 접속서비스인「보라넷」을 통하여 인터네트 접속서비스를 제공하며 인터네트상에 개설해놓은 「CDI파크」라는 CDI 회원을 위한 홈페이지를 통해 교육정보와 영어학습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CDI의 활용영역은 무궁무진하다.

아직까지 CDI는 TV상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구현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기기중의 하나다. 따라서 단지 초기 마케팅의 잘못으로 수요확산에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품성능의 우수성으로 인해 가능성은 계속 남아있다고 하겠다.

〈원철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