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프트웨어업체들이 제품 개발과 함께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사항이 상품의 가격 결정이다.
상품의 가격은 제품에 내재된 가치를 나타내는 척도인 동시에 고객의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최초, 최후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제품 가격의 결정은 통상 개발비와 인건비, 유통비, 재고부담 등 필요 원가를 판매 가능 물량과 연동해서 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컨데 5천만원의 원가가 투자된 제품 1백개를 팔 수 있다면 그 가격은 개당 50만원을 책정해야 개발비용을 뽑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여기에 약간의 운영비, 재투자비용 등을 감안한다면 20% 정도의 이윤을 붙여 60만원에 판매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교과서적인 가격 결정은 그야말로 원론 수준에 불과한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의 심리와 복잡다단한 시장상황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제품 가격이 싸다면 더 많은 사용자들이 구매할 것이고 그만큼 매출이오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얘기다.
SW개발업체들 가운데 원론적 기준에 근거해서 가격을 결정하는 곳은 거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시장 상황이라는 복잡한 변수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시장경쟁이 치열해지면 원가 이하 가격에도 제품을판매할 수 있고 생존전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무조건 상대방 보다 낮은 가격을 책정하기도 한다. 기업들의 이런 모습은 경쟁이 과열될수록 많아질 수밖에 없으며 때에 따라서는 이를 당연한 수순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사용자들이 경쟁업체의 가격과 비교해서 구매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수준, 즉 가격저항선 근처에서 제품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다. 물론 이같은 가격결정 방법이 횡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 SW업계만 나무랄수는 없다. SW의 개발과 공급의 과정이 시설투자를 우선 하는 장치산업의그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SW는 인건비를 기반으로 무형에서 유형을 창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가치 산정이 어려운 특수 산업이라는 것이다.
이에대해 한글과컴퓨터 박상현 영업이사는 『현재 국내 SW 개발 업체들은 원가 보다는 시장상황을 우선해서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고 밝히고 그러나 이는 『SW 원가 산정이 어려워서라기 보다는 업체들이 시장상황을 무시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악순환 고리』라고 지적하고 있다. 시장 경쟁을 극복해야 하는 개발업체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업체들이 시장환경에 따라 자의적으로 가격을 결정함으로써 나타나는 가장 큰 폐해는 동일 제품에 대한 가격의 다중구조 현상이다. 일반사용자(개인)시장과 번들 시장으로 양분됨으로써 이중 가격이 형성되고 있는최근의국내 상황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번들의 경우 별도의 영업조직을 동원하지 않고도 일시에 대량 판매할수 있어 영업단가(가격)는 그만큼 낮아지게 된다. 문제는 그 가격이 시중의소비자들이 구입하는 소매용 제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이같은 이중 가격 구조 때문에 사용자들은 해당 제품, 나아가서는 해당제품의 개발사에 대한 배신감과 괴리감 등을 맞보게 된다는 것이다.
사용자들의 배신감과 괴리감은 『SW를 정상적인 값을 주고 구입할 필요가 없다』라는 불신감으로 이어져 마침내 불법복제나 비정상 유통구조의 난립 등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개발사들이 가격을 자의적으로 결정함으로써 형성되는 대표적인 시장 형태가 바로 번들SW시장이다. 번들SW 시장에 대한 정리는 SW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함과 동시에 SW산업의 기틀을 굳건히하는 첩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함종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