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은 국내 컴퓨터산업 역사에 하나의 큰 획을 그은 해였다. 같은해 1월28일 정부는 83년도 제1차 기술진흥확대회의를 열고 83년을 「정보산업의 해」로 선언한 것이다. 정보산업의 해 선언은 정보화 실현을 위해 정부차원에서 각종 시책을 전개하고 수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부가 이제 막 손아귀에 잡힐듯 말듯하는 정보산업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산업분야로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민간업계에도 정보산업의해의 선언은 큰 의미를 가져다줬다. 신제품 개발에 대한 투자, 표준화 수용등 쉽게 결론에 이르기 어려운 의사결정 과정에서 비로소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정부라는 우산 아래 오직 개발과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정부 역시 70년대 후반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컴퓨터회사나 전산화 도입을추진하는 기업의 난립과 돌출행동을 추스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던 터였다.
사실 82년까지만 해도 업계는 수시로 바뀌는 정부정책에 대해 모종의 불안감을 가졌다. 컴퓨터 국산화와 교육용 컴퓨터의 보급과 같은 특정과제를 놓고관련부처끼리 다툼을 벌일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상황은 보다 심각해졌다. 일부업체가 정부에 노골적인 불신감을 드러내면서 전산화 또는 국산화를 포기하겠다고 떼쓰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곤 했다. 82년께 과기처 정보계획국장이던 K씨의 회고.
『82년 7월 「전자계산조직(컴퓨터)의 도입 및 이용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면서 정보산업 정책의 핵심이던 컴퓨터 도입(수입) 심사업무가 과기처에서상공부로 이관됐습니다. 대신 과기처는 복마전으로 표현됐던 컴퓨터 국산화정책을 맡게 됐는데 만족스러울 리가 없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과기처는당시 국산화가 추진되고 있는 컴퓨터 품목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를 취하게됩니다. 이른바 「국산화 지원 조치」라는 것이었는데 국산화 업체들은 두팔을 들고 환영했지만 전산화 계획을 진행하던 금융기관, 정부기관, 대기업 등컴퓨터 수요자측은 엄청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그런 식이었지요.』 불신감만 더해주던 정보산업 정책이 정보산업의 해 선포로 가닥을 잡게 된 것은정부입장에서도 바람직한 일이었다. 정보산업의 해 선포를 계기로 83년 한해동안에만 기록에 남을 만한 다수의 굵직굵직한 프로젝트가 시작되거나 완료됐다. 당시 신문기사를 정리해보면 현재 정보통신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정책대부분의 출발점이 83년으로 거슬러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몇개를 추려본다.
83.3 정보산업 육성방안 대통령에 보고 과기처, 최초 국내 컴퓨터실태 조사
83.4 KBS 2TV, 국내 최초 컴퓨터강좌 프로그램 신설 정보산업육성법(안)마련
83.5 상공부 정보산업담당 정보기기과 신설 행정전산화 계획 확정83.7 청와대에 정보산업 육성위원회 설치 국가기간전산망 구상(안) 대통령에 보고
83.11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국내진출(큐닉스와 기술제휴)83.12 국가기간전산망 기본방침 마련
정보산업의 해 선포를 이끌어낸 83년도 1차 기술진흥확대회의는 대통령을비롯, 전 국무위원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 전자기술연구소(KIET), 한국데이타통신(현 데이콤) 등 출연기관과 공사, 한국전자공업진흥회 등 단체,기업, 대학, 연구소 등 각계 대표 2백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그해 1월 28일청와대에서 열렸다.
기술진흥확대회의는 5공화국 정부가 기술개발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신념아래 기술 드라이브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70년대부터 지속돼온 무역진흥확대회의를 본떠 만든 정책 상설기구였다. 의장은 대통령, 주관부처는과기처였다. 각부처, 업계, 연구계, 학계 대표 등으로 구성되는 기술진흥확대회의는 82년 11월 첫회의 이후 분기별로 한번씩 열렸는데 주요 기능은 기술개발 제도 마련과 개선, 기술성공사례 발표, 공로자에 대한 훈포장 등을통해 산학연 기술개발 의욕을 고취하는 것이었다.
이날 열린 83년 1차 회의 내용은 결과적으로 정보산업의 해 선포가 핵심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이 회의에서 정부는 82년 11월의 첫회에서 한국데이타통신 이용태 사장(현 삼보컴퓨터 회장)이 정보산업계를 대표해서 보고했던 정보산업의 해 선언 건의를 정식으로 채택했다. 이 회의에서는 또 이정오 과기처장관이 정보산업의 해를 실현하기 위한 각종 시책을 전개하며 향후5년 동안 2천억원의 예산을 관련기술 개발에 투자하기로 하는 등의 정책방향을 제시해 언론의 큰 관심을 모았다.
이날 회의 이후 정보산업 정책 관련부처였던 과기처, 상공부, 체신부 등과유관부처인 문교부(컴퓨터 교육), 총무처(전산행정)등 5개 부처 관계자들이바빠지기 시작했다. 정보산업의 해를 정보산업 육성 원년으로 삼는다는 기술진흥확대회의 결의에 따라 2개월 안에 그 육성방안을 마련, 대통령에 보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83년 3월 14일 대통령에 정식 보고된 「정보산업 육성방안」은 정부가 체계적으로 정보산업 육성에 나서겠다는 것을 밝힌 최초의 정책문건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오늘날과 같은 정보통신산업의 자리를 다지는 계기를 제공한 행정전산망, 금융전산망, 교육연구전산망, 국방망, 공안망 등 5대 국가기간전산망 계획수립에 대한 직접적인 근거를 마련해주고 있기도 하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호에서 소개하겠지만 정보산업 육성방안의 문건 말미에는 〈정보산업 육성을 위한 건의〉라는 것이 있는데 이 대목이 바로 오늘날 전산망조정위원회의 모태가 되는 정보산업육성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 대한 것이다.
정보산업육성위원회는 정보산업과 반도체 관련업무를 관련기관별로 분담하고 협조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정부내 기구로서 위원장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위원에는 과기, 상공, 체신, 문교, 총무 등 5개부처 차관과 청와대 비서실의정무2, 경제, 교문 수석 등 10여명이 임명됐다. 위원회의 주요기능은 반도체공업과 정보산업육성의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중요 정책사항에 대해 심의하고조정하는 일이었다. 부처간 업무분장, 필요한 지원대책, 전문인력의 양성,통신망과 컴퓨터의 이용기술개발사업, 관련제품의 생산 등 구체적인 역할 등에 관한 것도 포함돼 있다.
정보산업육성위원회는 정보산업 육성방안 문건에서 구성이 건의될 당시만해도 이미 활동중이던 반도체공업육성 추진위원회에 관련기능을 보강, 반도체 및 정보산업육성위원회라는 이름으로 한시적으로만 활동할 예정이었다. 81년에 발족됐던 반도체공업육성 추진위원회는 83년 64K D램의 개발완료를 목전에 두고 있었고 2백56K D램 개발에 착수하는 등 상당한 추진력을 과시하던중이었다. 따라서 독립기구를 만드는 것보다 반도체쪽의 성공사례와 운영방식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는 건의였다. 이같은 방침에 따라 정보산업육성위원회 위원장도 당초에는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이 내정돼 있었고 위원도 KAIST 전산개발센터(현 시스템공학연구소) 소장, 한국데이타통신 사장,총무처 행정관리국장, 과기처 정보계획국장 등 차관급보다 몇단계 낮은 인사들로 채워질 판이었다.
하지만 전자산업과 정보산업 육성에 강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전해지는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위원장은 비서실장, 위원은 전원 차관급으로 격상됐다.
당시 정보산업육성위원회 실무위원회에서 연구조사활동을 벌였던 C씨의 회고.
『대통령은 정보산업 육성방안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위원장을 비서실장으로 격상시키고 위원회의 기능과 목적도 반도체와 정보산업을 동등하게 배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국장급들이 나설 일은 따로 있다는 말도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비서실장이 5월 14일 「정보산업육성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관한 (대통령)의 지시」를 각부처에 하달함으로써 강력한힘을 갖는 위원회가 발족될 수 있었던 겁니다.』
83년 5월에 정식발족된 정보산업육성위원회는 자신을 탄생시킨 정보산업의해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열성적인 활동을 벌였다. 이 위원회가 대통령이나위원장에 보고한 주요 정책문건들은 「국가기간전산망계획 관련 사항보고」(7월) 「국가기간 전산망 구성, 운영에 대한 각계 의견청취 보고서」(9월)「국가기간전산망 구성, 운영을 위한 제안」(10월) 등이 있다. 당시 우리나라 정보산업 현황이나 관련정책 수준 등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 정보산업육성위원회는 이들 보고서를 토대로 83년 12월 「국가기간전산망 계획(안)」을 내놓게 된다. 바로 오늘날 5대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의 시초가 되는 역사적인 문건이다.
정보산업 관련기구로는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직속으로 발족된 정보산업육성위원회는 이듬해 4월 기술진흥심의회가 발족되면서 기술개발 정책업무를이관하고 행정조정지원업무만을 수행하다가 84년 8월 전산망조정위원회로 개편된다. 전산망조정위원회는 84년 이후 오늘날까지 국가 정보통신산업 정책을 의결하고 심의하는 최고 기구로 통한다. 다시 정리해보면 83년 정보산업의 해의 선포는 바로 전산망조정위원회의 탄생을 알리는 소쩍새였던 셈이다.
<서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