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연중기획 SW산업을 살리자 (30)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의 고민은 유통과 영업과정에서 집약돼 나타나기 마련이다.

프로그램의 기획과 개발에만 전력하고 싶지만 유통에 대한 비중을 확대하고 불법복제를 단속하기 위해 애를 태워야 하는 현실이 바로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개발사 입장에서 보면 유통은 자체 조직보다는 별도의 유통 전문사를 통하는 것이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독자적인 유통망과 노하우를 갖고 있는 유통전문사를 활용하면 개발사들은 본업(기획과 개발)과 기술 지원만을 전담할수 있고 필요 이상으로 조직이 비대해지는 것을 막을수 있게 된다.

물론 기존에 이같은 형태의 유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 최대 유통사였던 소프트라인의 부도를 계기로 일반 소비자 대상의 소프트웨어 유통체계가 대부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개발사가 외부 유통업체를이용할 수 있는 창구가 막혀버린 상황이 오고 만 것이다.

이와 관련, 중소기업 고객 대상의 경영정보시스템(MIS)패키지 개발사의한 관계자는 『개발사 입장에서는 제품만 만들어 놓고 유통은 유력한 대형유통업체를 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소프트라인이 도산한 후부터는 활용할 말한 유통채널이 전무한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자체 대리점망을 구축하는 등 유통조직을 갖추고 있지만 쓸데없이 조직만 비대해지는 결과를 초래, 경영자의 입장에서는큰 부담이 된다』고 실토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유통업체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소프트뱅크코리아(SBK), 큐닉스정보기술, 선경유통 등 유통업체들이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대기업 그룹사 소속이어서 계열사를 이용한 특수 영업이 주목적인데다 그나마외국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제품이나 게임 타이틀이 취급 품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확실한 유통채널을 활용코저 하는 개발사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같은 상황 때문에 한글과컴퓨터의 경우 한컴서비스라는 별도의 유통전문법인을 설립, 영업과 서비스 등을 맡기고 있다.

전문 유통사들이 몰락하고 개발사들이 유통까지 직접 나서야 하는 배경은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바로 협소한소프트웨어 시장 상황이다. 이는 국내 최대 소프트웨어업체인 한글과컴퓨터의 연간 매출액이 같은 벤처기업 출신의 하드웨어 업체인 삼보컴퓨터의 10분의1 정도에 그친다는 점에서도 분명하게 입증되고 있다. 뿐만아니라 패키지개발사들의 연간 매출액을 모두 합치더라도 삼보컴퓨터의 PC 판매액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프트웨어 시장이 황폐해진데는 소비자 구미를 당길 수 있는 좋은 제품을만들지 못한 개발사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발사들의 유통조직 활용 측면에서 본다면 소프트웨어 산업 전체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불법복제의 기승이라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유통 채널의 발달은 불법복제에 대한 감시 역할도 톡톡히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유명 PC 회사 소속 대리점들이 불법복제 유통 혐의로 무더기 제소된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는 사회 전반에 걸쳐 뿌리깊게 만연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소프트웨어업계 한 관계자는 『사용자들이 PC를 구매하면서좋은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깔아줄 것을 요구하는게 당연시되고 있으며 또 하드웨어 유통업체들 입장에서도 자사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차원에서자연스럽게 사용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으로 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소프트웨어는 「말만 잘하면」 얼마든지 공짜로 얻는 것이란 생각이 사회전반에 걸쳐 만연돼 있어 정상적인 유통시장이 위축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정상적인 유통시장이 무너지며 개발사들의 영업도 부진해질 수 밖에없고 영업이 부진하니 재투자에도 나설 수 없어 좋은 제품을 개발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야기7.3」의 시험판 불법복제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는 큰사람의 한 관계자는 『불법복제만 철저히 단속해주면 지금이라도 영업이 정상화되는 것은 물론 신제품 개발 등 재투자에도 적극 나설 수 있을 것』이라며최근 심정을 토로한다.

불법복제가 난무하게 된 것은 유통조직을 갖추지 못한 개발사들이 시장점유율을 확대한다는 명목으로 <프리웨어> <쉐어웨어>와 같은 설익은 영업기법을 마구 도입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불법복제를 묵인하는 경우도 다반사여서 소비자들에게 소프트웨어는 공짜라는 인식만 확산시켰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90년대 중반이후 컴퓨터 뿐아니라 정보통신산업 전체의 핵으로 자리잡았다. 정보통신산업이 밑바닥에서 부터 흔들리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제 유통체계의 황폐화와 불법복제 문제는 온 국민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함종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