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품목만으로는 사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무슨 사업이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수십년간 튜너만을 생산해 온 한 업체의 사장은 오디오경기의 침체로 매출이 급감하자 새로운 사업아이템을 찾느라 지난 상반기동안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최근 이 회사는 그동안 튜너사업에서 쌓아온 기술을 바탕으로 전압제어발진기(VCO), 온도보상형 수정발진기(TCXO) 등 통신부품사업에 본격 참여할 것을 선언했다.
『다행히 튜너기술을 통신부품에 응용할 수 있고 때마침 통신산업이 각광을 받고 있어 운도 따라 주는 편』이라며 이 회사 사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같이 수십년간 한가지 아이템만 고수해 온 부품업체들이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인해 그동안의 외고집을 버리고 사업다각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들은 세트업체의 해외진출에 따른 내수시장 축소, 인건비 상승, 후발국의 추격에 따라 범용부품만 생산해서는 더이상 버틸 수 없다고 보고 고부가가치 품목을 개발, 장기적인 불황에 발빠르게 대처해 나가고 있다.
특히 이들 업체는 대부분 황금시장이라 일컬어지는 정보통신분야로의 사업다각화를 서두르고 있어 가전시장에 이어 정보통신시장에서 부품업체간의 일대 혼전이 재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각 업체들은 누가 먼저 정보통신 관련 부품사업에 진출해 발판을 마련하는가에 따라 향후 운명이 갈릴 것으로 보고 사활을 건 사업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는 각 부품업체들은 유관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혀가고 있는데 그동안 쌓아온 기술력과 인력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고 리스크도 낮다는 점에서 업체들이 이같은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국내 인쇄회로기판산업을 이끌어 온 코리아써키트는 PCB 제조기술을 모태로 반도체 테스트용 번인보드와 HDD 어셈블리 등 PCB 조립부문으로의 사업다각화에 성공한 케이스다.
이 회사는 최근 일본 히타치와 기술제휴, 드라이필름 등 PCB를 축으로 다양한 전자재료 및 케이컬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스위치, 볼륨, 릴레이 등 회로전환 부품업계의 대표격인 경인전자도 자사의 스위치기술을 최대한 활용한 리모컨시장에 이미 수년 전 뛰어들어 성공을거뒀으며 최근에 반월공장을 매각, 자금력을 바탕으로 기술관련도가 높은 센서 등 유망성 부품사업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
수정디바이스업계의 선두주자격인 싸니전기도 무선통신기술을 접목한 무선통신기기나 통신모듈 센서사업 확장을 추진중이며, 저항업체인 한륙전자와아비코도 저항기술을 이용한 NTC 서미스터, 적외선 센서 등 유관분야에서 신규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데크메커니즘업체인 새한정기는 데크메커니즘 기술력을 바탕으로 차량용 CD체인저 등 완제품시장을 공략하고 있으며, 전지업체인 로케트전기와 서통도유관분야인 이동통신기기용 전지팩사업에 본격 나서고 있다.
일찍 사업다각화에 나선 엔케이텔레콤(舊 삼미기업)은 유관분야보다는 새로운 분야로 사업다각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사례로 꼽힌다. 원래 스피커전문업체인 이 회사는 세트 중에서도 특히 오디오경기가 최악의 불황으로 접어들면서 스피커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페이저 등 각종 통신기기로 사업영역을 넓혀 본래 주력이었던 스피커의 매출비중을 절반 이하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어 최근에는 모뎀, 사운드카드, VGA카드 등 컴퓨터 주변기기사업에도 손을 대 발빠르게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커넥터 전문업체인 (주)우영도 커넥터사업이 최근 전자부품시장의 침체로위축되고 있어 액정표시장치(LCD)의 백라이트용 도광판사업 및 팩시밀리, CD롬 드라이브 등 완성품 조립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EMI필터 제조업체인 동일기연도 컴퓨터 주변기기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CD롬 드라이브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페라이트 등 각종 영구자석을 제조하고 있는 태평양금속도 합작사인 일본히타치의 기술을 이전받아 최근 발족한 중앙연구소를 중심으로 부품개발에나서고 있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유관부품 등 제조업에 투자하는 것과 달리 아직 일부이기는 하지만 서비스업 등 비제조업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 경향도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새한정기는 새로운 법인을 설립해 복합레저타운 건설에 나서고 있고, SMPS전문업체인 람다코리아는 인터넷에서 업체에 필요한 정보를 찾아주는 정보검색 대행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대성전기는 유망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유통업에 진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부품업체의 사업다각화 움직임에 대해 엔케이텔레콤의 전만섭 사장은 『대기업의 사업확장과 후발국의 추격에 따라 국내 전문업체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며 『기술흐름에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중소기업의 특성에 맞는 고부가 품목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불황에 흔들리지 않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권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