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업계, 경쟁력 약화에 행정규제까지 몸살

『전자업계는 안팎으로 곱사등이의 신세다.』 『로마로 통하는 길은 마치전자산업계에 있는 것 같다. 경제위기의 모든 처방을 전자업계에서 찾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최근 전자업계 관계자들이 정부의 물가정책과 환경문제의 해법을 바라보며하는 하소연이다. 수출부진과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에는 빠지지 않고 전자업계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상황이다.

올 물가억제선 4.5%가 붕괴된 지난 10일 가전업계는 일제히 큰 숨을 몰아쉬었다. 국내가격이 해외가격보다 높은 PC, 카메라, 오디오, 청소기, 카세트레코더 등 13개 주요공산품의 가격인하를 행정지도를 통해 유도해 나가겠다고 정부측에서 발표했기 때문이다.

수율향상, 비용절감 등의 경영합리화 노력으로 어렵게 「살림」을 꾸리고있는 전자업계에 또다시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주문이었던 셈이다.

지난 11일 전자산업진흥회에는 가전 3사 임직원 10여명이 머리를 맞대고앉아 장장 4시간 동안의 회의를 갖고 있었다.

다름 아닌 세탁기, 에어컨 등 폐가전에 대한 폐기물 예치금 인상을 골자로한 환경부의 재활용촉진법 개정 추진에 따른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해도 너무합니다」라는 것.

그러나 이마저도 「환경을 살리자는 데」라는 주변의 따거운 눈총으로 감정조차도 드러내지 못하는 눈치였다. 가전 3사를 비롯한 전자업계는 이날 건의문이라는 점잖은 호소문을 내기로 결정했다.

전자업계에 대한 정부의 해법 기대는 이뿐 아니다. 수출이 곤두박질 치자제일먼저 나온 수출대책이 반도체수출 확대방안이었다. 전반적인 세계 반도체경기의 후퇴현상으로 비롯된 반도체 수출부진을 전자업계만을 탓하고 나선것이다.

「위기경제」의 모든 길이 전자업계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만도 하다.

나라 경제가 어렵다. 무역수지가 악화되고 이같은 현상이 계속되면 올해우리나라가 짊어질 외채가 약 1천억달러를 육박할지도 모른다는 지적도 적지않다. 당연히 허리를 졸라매는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고통분담이다. 외국과 비교해 가격이 비싸다는 주요 전자제품 생산업체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먼저 오디오업체들은 이미 「전문업체」라는 말이 사라졌다고 할 정도로 위기에 처해 있다. 경영난은 둘째 치고 수출마저도 94년이 후 두자리 수의 감소현상을 빚고 있다.

특히 가전 3사의 올 상반기 총 매출은 14조원. 그러나 경상이익은 전년동기대비 59.8%, 순이익은 54.5%나 각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잘 나가던 반도체 3사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전자산업이 경제를 주도하는산업임에 틀림 없지만 마냥 호황을 누리는 업종만은 아닌 셈이다.

여기에 새로 등장한 폐기금예치금 인상도 악재다. 이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의 「하면 된다」라는 군사문화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한착각에 빠질 정도다. 환경부가 구상하고 있는 예치금은 폐기물 회수 및 재활용도와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50% 인상하는 것으로 돼 있는 데 이로 인해 업계 부담액은 약 1백40%나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냉장고에는 새로 대당 3천6백원의 예치금을 책정, 그나마 경상손실에 허덕이는 냉장고 시장을 꽁꽁 얼어붙게 하고 있다.

정부는 그러면서도 쉽게 자신들이 해결할 수 있는 처방에는 인색한 태도를보이고 있다. 공산품에 대한 가격안정 문제도 15%에 이르는 특별소비세를 인하하면 간단히 정리될 사안인 데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반도체의 수출문제를 들먹이면서도 업계의 공장부지 해결에는 2년이 넘게뒷짐을 지고 있다. 폐가전에 대한 폐기물 예치금 인상방안을 내놓으면서도예치금의 사용용도는 폐가전 처리와는 사실상 거리가 있다. 행정규제 완화및 정부의 지원책은 업계의 실상과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그러나 기업보다는 먼저 정부부터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아쉽다고 하겠다.

<모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