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많이 팔린 마이크로소프트사의 CD롬 백과사전 「엔카르타 96」에 「동해」가 [Sea of Japan]으로 표기돼 물의를 빚었다. 이 회사에서 나온엔카르타 오브 월드 아틀라스라는 멀티미디어 지리부도엔 울릉도와 독도가일본 영토라고 표기돼 있어 국내 매스컴에도 크게 보도됐다. 정치인과 관계부처, 그리고 PC통신에서의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계속적인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과 억지 주장이 한일관계에 앙금을 더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발생해 국민들의 감정을 더욱 격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전세계적 로비가 얼마나 치밀하고 장기간에 걸쳐 진행돼 왔는지 그리고 우리의 대응이 얼마나 미온적이고 허점투성이인지를 발견한 또 하나의 사례라 할 것이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전세계에 보급하는 문제에 관한 한 정부나기업이나 민간 단체들의 방식이 이제는 전향적으로 다시 검토돼야 한다는 게아마도 이번 사태의 가장 중요한 교훈일 듯하다.
「엘리트 체육」에 대한 지적은 정당히 수용돼야 마땅하지만 사실 한국의이미지 향상에 관한 한 가장 커다란 공로를 세운 분야는 단연 스포츠다. 몬주익 언덕을 오르는 황영조 선수나 이번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선전했던 우리어린 선수들, 그리고 2002년 월드컵에 이르기까지.
여러 산업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는 한국의 기업들도 이런 면에서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클래식 음악의 천재들이 펼치고 있는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또 무엇이 있는가. 진정 한국의 문화와 역사적 유산과 우리 사회의 살아있는 생생한 기운을 세계인에게 전달하는 데 있어서 우리의 힘과 노력은 어느정도인가. 「엔카르타 사태」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진정한 교훈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세계 어느 나라든 전통문화는 있게 마련이고 그것이 현재의 삶을 주도적으로 지배하지 못하는 마당에야 호기심 이상으로 다가가기는 힘들다. 심지어한국 사람들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우리 전통문화의 세세한 내용을 전달한들그것이 무엇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겠는가. 그건 외국에서 할 일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먼저 할 일이다.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관해 생각해 보자. 전통문화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실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문화나 교육적 내용이나 우리어린이들이 인터넷에 접속해 애착심을 갖고 방문해 볼 만한 사이트가 과연몇 개나 있는가. 나는 계속 우리의 문화적 교육적 자산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지만 이 분야에 관한 한 우리는 너무도 후진적이다. 외국의 백과사전에 견줄 우리의 백과사전은 있는지 고민하기 보다는 선정적인눈초리로 「엔카르타 사태」를 보고 있는 게 사실은 더 걱정이다.
흥분을 가라앉히자. 특히나 현재와 같이 CD롬과 인터넷의 사이버 스페이스를 통해 세계인이 하나로 되어가는 상황에서 우리의 지혜와 창의력과 문화를디지털화하는 작업은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된다. 그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문화적 소양과 미래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다.
<이건범 아리수미디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