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4주년특집] 멀티미디어 지방화시대

멀티미디어산업단지를 유치하려는 민간단체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의 경쟁이점입가경이다.

민간단체에서 나름대로 미디어밸리의 조성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유치서명에 들어갔으며 도시 곳곳에 플랭카드를 내걸면서 유치의욕을 불사르고 있다.

멀티미디어산업단지의 유치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회의원들도 여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국회의원들의 연구모임인 가상정보가치연구회(회장 이상희 의원)는 창립기념으로 지난 2일 의원회관소회의실에서 미디어밸리와 관련된 정책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지금까지 멀티미디어산업단지 유치를 선언한 지방자치단체들은 광주, 대전,인천 등 광역시와 경기, 경북, 충남 등 도 그리고 춘천시 등 중소자치단체들이다. 이들 지방자치단체들은 멀티미디어산업단지를 유치해야만 지역경제가 살아날 것으로 판단, 구체적인 계획과 예정지를 내놓고 유치경쟁에 나서고 있다.

『현재 조성 중인 첨단과학산업단지 내에 58만평 규모의 멀티미디어산업단지를 조성, 낙후된 지역을 발전시켜 나가겠다』(광주), 『고속전철역이 들어서는 천안 역사에서 5분 거리인 아산일대에 대단위 멀티미디어산업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충남), 『96년부터 2000년까지 구미시에 50만평 규모의 대단위 멀티미디어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경북), 『대덕연구단지와 연계,유성지구에 1백만평의 멀티미디어산업단지를 조성할 방침이다.』(대전)

특히 중소도시 춘천시는 유치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의욕적인 사업을 벌이기도 하고 있다. 도시 전체를 영상단지 및 테마파크사업 등과 연계한 멀티미디어단지를 조성키로하고 지역 내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정보통신 관련 동아리모임을 주선하거나 멀티미디어 예술전문대학의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이들 자치단체는 자기 지역으로 멀티미디어산업단지를 유치하기 위해지역출신의 유명인사들로 유치위원회를 구성, 중앙정부를 대상으로 치열한로비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들이 유치선언을 하고 신문지상에 거창한 계획을 발표한 지 상당한 시일이 지났지만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곳은 아직 없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나름대로 유치 당위성을 내걸고 발표한 이같은 멀티미디어산업단지의 조성계획 역시 하나같이 엇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더욱이멀티미디어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없는 데다가 정보전문가들마저 부족해 체계적으로 멀티미디어산업단지 조성계획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관련 공무원들조차 지방자치단체 스스로 이같은 계획들을 실천할 수 있는여력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 공무원은 『이왕에 멀티미디어산업단지가 조성되려면 반드시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이루어져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동안 전국 관심사로 떠올랐던 멀티미디어산업단지의 유치경쟁 열기도 최근 들어 사그라들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지난달 초 정보통신부가 발송한 공문이 지방자치단체들에게 일제히 접수되면서부터.

이 공문에서 정보통신부는 『멀티미디어산업단지는 현재 민간차원에서 업계 의견 수렴과 기획연구를 실시하고 있다』면서 『정통부는 단지조성 자체에 대한 경제적 타당성을 연구검토 중에 있으며 향후 민간기업으로부터 이사업에 대한 공식적인 건의가 있을 경우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지원여부와지원의 구체적인 내용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내용을 뒤집어 보면 민간기업의 건의가 있을 경우에만 지원해 줄 뿐,정부가 나서서 단지를 조성할 계획이 없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들의 공무원들은 『지금까지 정통부가 멀티미디어산업 육성계획서에서 밝힌 멀티미디어단지의 조성이 물건너 간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공문은 지방자치단체들의 치열한 유치경쟁을 주춤하게 하는 데는 일조했으나 가뜩이나 높은 중앙정부 정책에 대한 지방자치단체들의 불신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 공문을 접수한 지방자치단체들은 정통부의입장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들은 『언제는 멀티미디어단지 조성분위기를띄워놓고 막상 지방자치단체들이 유치경쟁에 나서자, 민간단체들에 모든 공을 떠넘긴 것은 정부가 사전에 수도권지역에 지원대상을 정해 놓고 이를 면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면서 의혹을 나타내고 있다. 아울러 이들은 『민간기업들과 공동으로 멀티미디어단지를 조성하라는 것은 단지를 조성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현재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국내 정보관련 산업체가 모두 수도권에 집중돼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수도권을 제외하고 민간업체들과 공동으로 멀티미디어 산업단지를 조성할 수 있겠느냐면서 조성 자체를 아예 포기하다시피 한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앞으로 멀티미디어단지의 조성 자체가 어려워질 뿐만아니라 어느 지역이 지정된다해도 오히려 지방간의 골을 넓힐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따라서 멀티미디어단지를 대단위로 조성하기보다는 지방에 있는 대학과 연구단지, 정보통신업체들을 연계하여 먼저 소규모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한 정부의 지원도 지방자치단체들의멀티미디어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중점을 두는 것이 멀티미디어단지의 조성에따른 지역간의 오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원철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