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한가위 눈에 띄는 영화

고향 찾아가는 즐거움을 가질 수 없고, 누런 들녘을 바라보며 한숨돌릴 수있는 공간도 협소한 서울토박이들의 추석은 무료하기 마련이다. 가까운 친척을 찾는 일도 생각만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때문에 서울의 중추절 극장, 공연가는 말 그대로 「대목」이어서, 꼬리를 문 관람객들의 모습을 또 하나의 명절풍경으로 만들었다.

올해도 사정은 마찬가지. 연휴를 맞아 준비된 영화와 공연이 다양하다. 1년에 단 2회도 되지 않는 문화향수의 계절이 바야흐로 왔다. 특히 극장가는「추석 대개봉」이라는 표현이 광고판을 수놓으며 이번 영화로 여름방학과겨울방학 성수기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올해 추석 극장가의 특징이라면 예년과 달리 우리 영화가 많이 선보인다는점이다. 「박봉곤 가출사건」 「귀천도」 「그들만의 세상」 등 우리 영화와「언픽스」 「상해탄」과 같은 한, 중 합작영화가 추석을 전후로 개봉된다.

「박봉곤 가출사건」은 김태균 감독에 심혜진, 안성기, 여균동이 출연하는(주)영화세상의 작품으로, 서울 피카디리극장에서 21일 이미 개봉해 추석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가정주부이지만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지닌 푼수 박봉곤(심혜진 분)이 폭군남편 희재(여균동 분)의 학대로부터 벗어나 가출해 박봉곤과 집 나간 마누라 찾기 전문탐정 X(안성기 분)와의 사랑을 그리는 로맨스 코미디.

한국영화계에서 주연을 능가하는 인기와 능력을 가진 조연 연기자 이경영이 감독으로 데뷔하는 작품 「귀천도」도 지켜볼 작품이다. 한국무협영화의새로운 시도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제작초기부터 관심거리였다. 장차 세계를지배할 조선시대 왕인 정조의 후손 「빈」을 일본 낭인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시간의 문을 통과해 1996년 서울로 탈출하고 목숨을 건 혈투가 박진감있게 전개되는 등 줄거리가 흥미로운 가운데 관객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주)씨네2000의 작품 「그들만의 세상」(감독 임종재)도 주목거리다.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소개되는 이 작품은 권력지향적인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미국으로 보내진 도피유학생 러브(이병헌 분)와 조각난 멀티비전 앞에서 춤추는 3류 댄서 춘향(정선경 분)의 만남과 현대를 사는 젊은이의 사랑이펼쳐진다.

추석에 맞춰 서울 명보극장에서 선보일 「언픽스」는 한, 중 합작영화로(주)정명영화와 (주)두기봉의 공동작품. 한국의 최정일과 중국의 양백견 감독이 공동으로 연출했다. 한국의 한재석과 중국의 오천련이 각각 1급 살인청부업자로 등장해 「중경삼림」류의 홍콩느와르를 은막에 수놓는다.

서극 감독의 「상해탄」도 눈에 띈다. (주)삼영필름이 수입한 이 영화는일본의 대동아공영 야망이 들끓던 1910년대 중국대륙을 배경으로 왜곡된 시대상황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의 고뇌를 표현했다. 유덕화, 장국영을 비롯한한국의 정우성이 등장해 연기대결을 펼친다.

이번 추석연휴의 해외영화들은 현란한 폭력과 감각적인 성애(性愛)장면의적절한 혼합, 흥행을 위해 필요한 자극요소를 충실하게 가미한 할리우드류액션물들이 사그러들고 다소 차분한 편이다.

주목을 끄는 작품은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가 수입, 배급한 존터틀타웁 감독, 존 트래볼타 주연의 「페노메논(Phenomenon)」. 지극히 평범한 주인공이 어느날 정체불명의 섬광을 맞고 천재가 돼버린 후 일어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통해 사람들에게 삶의 본질과 사랑의 의미를 일깨우는 영화다. 감독은 한 인간의 놀라운 변화에 따른 사람들의 관심과 경계, 두려움등을 섬세하게 표현했으며 끝까지 곁에서 사랑으로 지켜주는 연인을 통해 잔잔한 감동까지 이끌어내려 노력했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가 준비한 영화 「틴컵(Tin Cup)」도 화제의 작품이다. 스포츠와 사랑이야기의 연계는 관객의 여린 감성을 자극하기에 잘 맞아떨어지는 「록키」식 단골소재였다. 이에 케빈 코스트너, 르네 루소, 돈 존슨 등 할리우드의 인기배우들이 출연한다면 이 영화의 분위기가 어떨 것인지감이 온다.

여인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패배자의 생활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정상에 도전하라』고 말하고 주인공은 사랑과 참인생을 얻기 위해 연습에 몰두한다는 이야기다.

제일제당 CJ엔터테인먼트가 선택한 영화는 마이크 리 감독의 「비밀과 거짓말」은 96칸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 여우주연상,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한외에도 96뉴욕영화제,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오프닝 작품으로 선정된 영화다. 등장인물들의 삶을 끈질기고 주도면밀하게 관찰하는 마이크 리의 시선을따라 인간관계 회복을 통한 구원의 세계로 들어가볼 만하다.

『밤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이고 언제 새로운 날은 밝아올 것인가』라는일관된 주제의식을 가진 그리스 태생(1935년생)의 창의적인 감독 앙겔로풀로스의 영화 「안개속의 풍경」은 예술영화 전용관인 코아아트홀과 동숭씨네마텍에서 추석과 동시에 소개된다. 이 영화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아버지를찾아 무작정 기차에 올라탄 남매가 황무지와도 같은 그리스를 가로질러 여행하면서 겪는 고통을 그린다. 남매의 여행은 피폐한 현대사회에서도 빛을 찾아 나서는 인류의 지향점을 대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