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헤비

<헤비(Heavy)>는 좋은 영화다.적어도 필자 개인의 판단으로는 그렇다는얘기다. 필자는 영화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소설이라는 서사구조를 창작해내는 일개 소설가다.그러나 영화를 보는 안목이 영화쪽 관계자들과는 사뭇다를 수 밖에 없다.

<헤비>가 좋은 영화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것이 정화적 기능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 때문이다.무얼 깨끗하게 하는가.이러저러한 까닭으로 비속해진 우리들의 심리상태를 신성한 상태로 전화(轉化)시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전통적 식습관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어떤 이유로 지방분이 많은양식을 한끼 먹었다고 하자.그는 돌아와 허겁지겁냉장고 문을 열고 김치를 꺼내 먹지 않으면안된다.부대끼던 속이 비로소 편안해진다.

우리가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란 다양하다. 광고와 평론가의 평, 혹은이미 그 영화를 본사람들에 의해 나도는 소문 등등이다.그래서 영화 보지만 대부분의 경우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과음한 것처럼 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하다.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영화를 보아야 하는데,그러나보면 어쩌다 김치같은 영화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럴때 우리는 「좋은 영화를 봤다」고 말한다.

<헤비>에는 우선 기관총이 나오지 않는다. 선혈이 스크린을 적시는 일도없다. 격정적으로 누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사랑하지도 않는다. 한적한 하이웨이 바에 내성적이고 뚱뚱한 피자 요리사 「빅터」와 대학 중퇴생인 아름다운 여자 「캘리」가 등장할 뿐이다. 그들의 일상을 전혀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매우 셈세하고 치밀하게 인간과 이웃의 심리에 도전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놀랍다.

제목을 왜 <헤비>라고 붙였는지 이 영화는 끝내 설명하지 않는다.하지만알 수 있다. 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고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것을 거창한무기나 전쟁,혹은 정념과 극단의 혐오가 아니라 인간의 맘 속에 소리없이 흐르고 있는 연민과 자애라는 것. 어쩌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인생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신인 감독 제임스 맨골드와 촬영감독 마이클 배로우의 훌륭한 팀워크가 이러한 형이상학적 주제를 비범하게 포착해 내고 있다. 두 차례 오스카상을 수상한 쉘리 윈터즈와 데보라 해리의 독특하고 안정된 조연은 이 영화를 더욱성숙하고 고전적인 것으로 빛나게 한다.

가히 공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범람하는 영화와 비디오의 홍수 속에서한줄기 바람으로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이 <헤비>가 아닐까.

<구효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