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정수기 사후관리 문제있다 (하)

현재 정수기의 품질관리는 한국정수기공업협동조합 주관하에 「물」마크라는 품질인증제도를 통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수기와 관련해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드물다. 미국의 수질협회(WQA)나 비영리 환경단체(NSF), 일본의 수도협회(JWWA)는 정수기를 관리하는대표적인 민간조직이다.

이처럼 세계 각국의 정부가 정수기를 간접적으로 관리하는 이유는 1차적으로 수돗물의 신뢰성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정수기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수돗물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는 것으로오해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정부는 정수기에 대해 뚜렷한 방침 없이 오랫동안 허술하게 관리해 온 것이 사실이다. 80년대까지 일반공산품(가전제품)으로 분류돼 공진청이 관리해왔으며 90년 식품(물)관리 차원으로 인식되면서 보건사회부로 업무가 이관됐다. 또한 이 당시까지만 해도 일반공산품에 부여되는 「Q」마크외엔 이렇다 할 품질보증제도도 없어 잇따른 불량품사태를 초래하게 됐다.

이후 92년 정수기공업협동조합이 발족된 데 이어 94년 처음으로 정수기 품질규격 및 검사기준이 마련되고 이 검사에 합격한 제품에 「정」마크가 부여됐다. 그러나 「정」마크는 38가지 음용수 수질기준 전 항목에 걸쳐 적합성을 검사하게 돼있어 실제로 역삼투정수기를 위한 인증마크가 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비역삼투방식 정수기 제조업체들이 불만을 제기하자 보사부의 업무를 이관받은 환경부는 정수기 전반에 걸친 정책을 재검토하고 여러차례의공청회를 거쳐 작년 8월 새로운 정수기 검사규정을 개정했다.

지난해 마련된 정수기 검사규정은 성능검사항목을 냄새, 맛, 일반세균 등5개의 의무항목과 기타 선택항목으로 구분, 더 많은 정수기가 품질제도 하에서 관리될 수 있게 하는 등 정수기공업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자율적인 관리에역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사후관리, 소비자 정보사항 표기규정을 마련하는 등 기존 정수기 검사규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강하는 데 노력한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국립환경연구원의 실태조사에서 나타났듯이 현행 정수기 사후관리체계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현실적인 한계를 노출하고 있고 보급률이 급속히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보완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와 관련, 환경부와 국립환경원 등 관계기관은 정수기와 관련된 최근의실태조사를 토대로 몇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불량정수기에 대해서 강력하게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환경부는 수돗물에 대한 정수기준을 정하는것이 수돗물에 대한 신뢰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해 정수기에 대한 직접적인 관리를 외면하고 있으나 정수기가 수돗물의 수질을 악화시킬 수 있는 소지가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적극적인 제재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사후관리와 관련, 현실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제품 성능검사를 「수질안전검사」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물」마크를 부착한 제품을 수거 검사하는 데는 건당 3백만원 정도가 들어 정수기공업협동조합이 수많은 회원사를 상대로 일일이 사후관리를 하는 데 부담이 되고 검체선정이나 검사원선정에서도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정수기의 소비자가격이 현재보다 낮춰질 수 있도록 유통과정을 개선하고 정수기에 대한 과대, 과장광고를 제한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와 관련, 환경부의 한 관계자는 『「물」마크제도가 시행된 지 1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 정수기에 대한 사후관리체계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라고 전제하고 『관련법규와 정수기 검사규정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보다 엄격한 사후관리가 이뤄지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수기와 관련해 끊임없이 논란과 시비가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돗물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 한 정수기에 대한 관심은 계속 높아질 전망이다. 동시에 정수기가 건강의 기본인 식용수문제와 직결돼 있음을 감안할때 향후 정수기의 사후관리문제는 국내 정수기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형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