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미국유명업체아성허문SW업계거인들(4)

<보컬텍(이스라엘)>

「작아도 최고를.」

이스라엘 보컬텍社는 세계 인터넷폰 시장에서 최고 강자다. 마이크로소프트, 넷스케이프 등 미국의 대표적 소프트웨어업체들이 웹브라우저시장을 겨냥해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가운데 보컬텍은 누구보다 먼저 인터넷의 또다른응용 가능성에 눈을 뜨고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보컬텍의 대표적인 제품은 「인터넷폰」. 이 제품은 인터넷을 이용해 국제전화를 시내요금으로 사용하도록 해주는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인터넷환경에서 국제전화를 통하지 않고도 전세계 어느 누구나 연결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제품이다. 비싼 국제전화를 시내요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발표 이후 전세계 컴퓨터업계는 물론 통신업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인터넷폰은 원래 보컬텍사가 95년 2월 처음 개발한 인터넷 음성통화용 프로그램으로 이 회사가 그 상표권을 갖고 있는 고유명사지만 어느새 일반명사로 자리잡았다. 마이크로소프트, 넷스케이프 등 세계 소프트웨어시장의 강자들이 보컬텍의 성공에 자극받아 앞다투어 이 시장에 뛰어들어 비슷한 제품을만들어냈지만 사용자들의 머리 속에 이 제품에 대한 인상이 너무 강하게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남보다 앞서가는 자가 당연히 누려야 할 특권인 셈이다.

보컬텍사가 인터넷폰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점유율은 95년 기준으로 약 94% 수준. 올해 마이크로소프트, 넷스케이프가 뒤늦게 이 시장에 가세했지만최소한 80% 수준의 점유율은 자신하고 있다. 이처럼 보컬텍이 웹브라우저와함께 필수적인 인터넷 소프트웨어로 자리잡은 인터넷폰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개발인원만 80여명에 이를 정도로 기술개발에 적극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연구개발투자 의욕으로 보컬텍은 일반전화와 같은 선명한 음질은물론 음성우편, 문자채팅, 파일전송, 직접통화, 다기능 디렉터리 등 다양한기능을 제공하는 인터넷폰 4.0 버전을 내놓고 후발업체의 추격을 따돌리고있다.

이 회사는 이같은 인터넷폰의 성공에 만족지 않고 인터넷을 이용해 원격지에서 화상회의를 할 수 있는 「인터넷 콘퍼런스」, 인터넷을 이용한 방송용소프트웨어인 「인터넷 웨이브」 등 일련의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고 인터넷통신 소프트웨어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이 쏟아져 나오는 소프트웨어산업의 특성상 기술중심지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한 업체, 즉 미국이 아닌 제3국의 기업이 세계 기술경쟁을 선도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보컬텍이 소속한 이스라엘은 캐나다, 독일, 영국, 호주 등 여타 영어 및 서구권 국가들과도 다른 독특한 환경에 처해 있다는 점에서 이 회사의 성공은 SW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스라엘 수도인 텔아비브 남쪽 25 지점의 헤르질리아에 위치한 보컬텍이인터넷폰시장에서 소프트웨어 종주국을 자처하는 미국기업들, 그것도 마이크로소프트 등을 물리치고 경쟁의 선두에 설 수 있었던 배경은 여러 가지로 분석해볼 수 있다.

보컬텍이 현재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던데는 무엇보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가겠다는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와 연구개발진의 꾸준한 노력이 가장 커다란 기여를 했다는 데 다른 의견을 제시할 사람이 없다.

하지만 보컬텍이 세계 최고를 양보할 수 없는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이스라엘 소프트웨어산업이 갖고 있는 독특한 국가 경쟁력을 간과할 수 없다.

잘 알다시피 유대교국가인 이스라엘은 중동 회교국가에 둘러싸여 외부 세계와 원활한 정보교환이 고립된 일종의 국제적인 섬과 같은 국가다. 또 중동국가들이 풍부한 원유를 바탕으로 경제를 이끌어가는 데 반해 이스라엘에는이렇다할 만한 산업자원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남다른 기술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정부는 민간의 기술개발을 적극 유도하기 위해 다른 국가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연간 50억달러의 재원을 갖고 벤처기업에 기술개발자금을지원하는 이른바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이다.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에 따라이스라엘 정부는 벤처기업당 1억달러의 자금을 지원, 매년 총 50개 업체에기술개발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들 업체가 회사당 10명의 직원을 고용하더라도 총 5백명의 직원고용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 벤처기업이 성공할경우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고용창출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이렇게 설립된 벤처기업들은 또 유관업체끼리 컨소시엄을 구성, 매달 최고경영자들이 모여 최근 기술동향 및 기업변화, 마케팅전략 등 경영전반에 대한 의견을 세세히 교환한다. 이 컨소시엄에는 처음부터 경쟁업체들이 참여하는 것이 배제돼 있기 때문에 의례적 만남이 아니라 경영 전반에 대해 솔직하고 깊숙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당연히 여기서 좋은 내용이 나오면 컨소시엄 참여업체들이 협력, 기술개발투자를 같이해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영업도 함께 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 컨소시엄을 지원하기 위해서 기술개발투자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50%의 자금을 지원한다. 이처럼 벤처기업과 컨소시엄에 투자해서 5%만 성공을 거둬도 국가 경제에는 커다란 이익이라는 것이이스라엘 정부의 계산이다.

89년 설립된 벤처기업 보컬텍이 미국의 공룡기업들을 물리치고 현재와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이같은 정부의 든든한 자금지원과 정보교환이 커다란 밑받침이 됐던 셈이다.

보컬텍의 또다른 성공 배경으로는 우수한 연구개발인력 확보를 들 수 있다. 세계적으로 이스라엘의 교육수준은 누구나 알아주는 상황인데다 정부에서도 젊은이들의 연구개발성과가 군입대 등으로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위해 가능한 사회에서 하던 것과 비슷한 일을 군대에서도 맡기고 이를 다시사회에서 응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남녀 병역의무제를 실시하는 이스라엘의 군복무 기간이 그 어떤 국가보다 길지만 군복무 기간이 사회에서하던 연구활동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환경에서 연구활동을계속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옛소련의 붕괴 이후 많은 유태계 과학자들이 이스라엘로 귀국, 저렴한인건비에 우수인재를 확보했다는 점도 보컬텍을 포함한 이스라엘 첨단기업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보컬텍은 이같은 자금과 기술력을 갖고 음성통신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에집중투자해 근거리통신망(LAN)환경의 음성대화용 프로그램 「보컬채트」, 이제품의 원거리통신망(WAN)버전인 「보컬채트WAN, 음성압축 및 재생용 소프트웨어 「콤팩트 오디오 테크놀로지(CAT)」 등을 개발해 간판 상품인 인터넷폰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력을 축적하게 됐다.

결국 경영진들의 과감한 경영전략과 정부의 든든한 자금지원, 그리고 우수한 인재가 삼위일체를 이뤄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것이 보컬텍 성공에 대한 분석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보컬텍이 남보다 앞선 기술을 보유했다는 자부심만 갖고 독불장군행세를 했다면 아마도 아직까지도 「우물안 개구리」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다. 이 회사는 자국내에서의 조금만 성공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을 추진, 미국의 컴퓨서브, 아메리카온라인(AOL), 보카 리서치사, 시러스로직, 퍼포먼스 시스템스 인터내셔널 등 유력업체들과 전략적인 제휴관계를형성했다.

이같은 제휴 계약에 따라 컴퓨서브와 AOL은 자체 통신망을 통해 보컬텍 제품을 지원하고 적극적인 보급에 나서고 있으며 세계적인 모뎀 공급업체인 모토롤러는 자사 제품에 인터넷폰을 번들 공급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세계 소프트웨어 기술개발 중심지인 미국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이스라엘의 보컬텍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과감한 연구투자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갖고 세계 주요 소프트웨어 기업들과 협력해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소프트웨어 기술개발을 선도하고 있는 과정은 비슷한 환경에 있는 국내 업체들도 눈여겨 볼만하다.

〈함종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