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업체제품 후원.협찬 현주소

지난 94년 12월 내한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 회장이 한국사람들을 위해 마련했던 <선물>은 「윈도NT3.5」의 소소스코드였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연구용으로 기증될 이 선물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예상대로 국내 언론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기증식은 빌게이츠 회장이 김포공항에 도착한지 2시간만에 이뤄져 그의 내한에 대한 극적효과를 더해줬다.

외국기업들이 국내에 처음 발을 디디고 본격적인 마케팅에 들어가면서 하는 작업 가운데 하나가 자사 제품의 무상 기증이나 협찬을 통한 얼굴 알리기 작업이다. 무상 기증이나 협찬은 그 대상이 대부분 대학과 연구기관 등 비영리 전문 기관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 대학과 연구소 등에 대한 무상기증과 협찬은 특히 기술력을 인증받을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함과 동시에 대외적인 홍보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최근 들어서는 국내 기업들도 대학을 대상으로 제품의 무상기증을 통해 자사의 제품 입지 강화에 나서고 있다. 컴퓨터서클 등 학생 모임에 대한 후원이나 협찬은 이제 국내기업들의 단골 메뉴가 됐다.

광학문자인식시스템 전문업체인 한국인식기술의 경우 국산 소프트웨어로는 상당한 지명도가 있는 「글눈」을 홍익대, 충남대 등 대학에 전격 기증,화제를 모았고 신소프트웨어상품대상 월간상을 수상한 바 있는 용마컴도 최근 수상작인 해부학 학습용 CD롬 타이틀을 전국 전문대 간호학과 등에 무상기증한 바 있다.

이처럼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제품 출시후 언론사나 교육기관 또는 권위있는 공공기관 등에 자사 제품을 기증함으로써 기술력을 평가받고 나아가서는 이를 통한 홍보 효과까지 꾀하고 있다. 어떤 형식으로든 제품의 우수성이 알려지게 된다면 그 파급효과가 상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품에 자신이 있다면 해 볼만한 전략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처럼 소신과 전략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기증이나 협찬 사례가 매우 드물다는 데에 있다. 자발적이어야 할 무상기증이나 협찬이 실제로는 기업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요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관계자들은 그 규모나 수량도 만만치 않아 매출이나 경영전반에 타격을 줄 정도로 심각한 경우도 있다고 털어 놓고 있다. 이른바 잘나가는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고 있는 H사의 경우 한 장애자 재활기관에 제품 몇개를 기증했다가 비영리기관 또는 단체를 자칭하는 곳으로부터 협찬 요청에 한달을 시달린 적이 있다.

대규모 기증행위를 강요하는 곳은 영향력 있는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이 훨씬 심하다. 컴퓨터 백신을 공급하는 A사는 정부 기관 가운데 한곳으로 부터 설치 컴퓨터 대수에 해당하는 만큼의 백신 프로그램 기증을 요구받은 바 있다. 어떤 정부기관에서는 계장도 한카피,과장도 한카피,국장도 한카피 하는 식으로 기증 강요 행위가 이루어진다. 또다른 강요 사례는 공개적익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동시 구매시 소프트웨어 값을 책정하지 않는 형태이다. 물론 이같은 기증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은 거의 없다.

재경원이 내년부터 정부기관의 전산화 예산 중 10%를 소프트웨어 구입비에 책정케한 것은 바로 이같은 실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업계 의견을 수렴,이 계획을 처음 입안한 한 정부관계자는 무상기증이나 협찬이 본래 의미를 벗어나 대규모 형태로 강요될 때 기업들은 <채산성 악화>와 함께 <제품 이미지의 추락>이라는 이중의 불이익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제품 이미지의 추락>은 이를테면 『돈을 주고 구입할 필요가 없는 제품으로 전락』을 의미한다고 이관계자는 덧붙이고 있다.

<김상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