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四季)를 놓고 볼 때 사색과 고독은 가을의 몫이다. 사색과 고독은 뿌리가 같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색(思索)은 쓰디 쓴 고독을 달콤한 사유(思惟)로 승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옛 철인들은 사색의 깊이가 깊을수록 말은 적어지고 침묵이 모든 것을 대변해 준다고 했다.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사색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때가 된 것이다. 가을은 오염된 가슴을 깨끗이 세정하는 데 더 없이 좋은 계절이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댁 해머실드는 『누구에게든 가장 긴 여행은 자기 내면으로의 여행』이라고 했다. 자기 내면으로의 여행을 통해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형역(形役)의 사슬을 끊는 데는 상당한 용기와 절제가 필요하다. 물질적 풍요가 정신세계로의 여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반자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좁게는 책이고 넓게는 문학이다.
올해는 문학의 해다. 문학은 사회를 비추는 인류의 거울이다. 이같은 거울을 만드는 기술도 미디어의 발달로 변화가 일고 있다. 정보기술의 진전으로 책의 재질과 형태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책과 지식의 공간적, 시간적 개념이 변화된 것이 사실이다. 요즈음 번창하는 사이버문학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변화는 형태적인 것이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사이버문학은 PC통신의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이루어지는 문학활동을 총칭하는 말이다. 사이버문학의 현단계는 하이퍼텍스트 형식과 월드 와이드 웹(WWW) 환경으로 설명될 수 있다. 현재의 사이버문학은 문자와 소리, 그림의 복합미디어를 사용해 텍스트의 폐쇄적이고 평면적인 면을 벗어나고는 있다.
그러나 사이버문학이 종이 책을 몰아낼 수는 있어도 항상 새로움을 찾아 나서는 문학의 본질까지 바꿀 수는 없다. 사이버문학에는 적극적인 상호작용과 탈중심적 개방이 평면적인 텍스트가 갖지 못하는 장점이 있다. 가상세계로 여행하면서 사색과 고독을 즐길 날도 멀지 않았다. 불황으로 인해 단조로 내려앉은 이 가을을 풍성함을 상징하는 장조로 변조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