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비밀과 거짓말

마이크 리 감독의 <비밀과 거짓말>에는 소위 유명배우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어느 순간 관객을 사로잡아 버린다. 그리하여 관객은이 영화가 끝나는 순간 「이토록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그것은 영화 내적인 것들의 촉발이며 영화 외적인 것들의 가세에 의한 이중적인 사로잡힘이다.

영화 외적인 사로잡힘은 낯선 서구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주인공들이 겪는 그 구질구질한 가난이, 그 지겨운 잔소리가, 사랑 때문에오히려 사랑하는 자를 상처입히고 마침내 그를 집밖으로 내몰고서야 후회때문에 울고마는 그 주변머리 없음이 너무도 익숙해서 오히려 낯설어보였다고나 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오래 전부터 동양 고유의 것이라고 여겨져 왔던 것이여기 아닌 저기 서양에서 문득 발견되는 순간 해답을 얻게되는 것이다. 영화 내적인 이유는 그들, 금방이라도울음을 터뜨리려는 자들 때문이다. 마이크 리 감독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도 바로이들의 초상이며 그 가계도이다.

그 가계도의 정점에서 신씨아 로즈 펄리(블렌다 블리씬 분)는 가장 먼저 운다. 그녀를 노상 울게 하는 것은물론 지금의 그녀를 구질구질하게 만드는 삶 자체이겠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자들 때문이다. 남동생과 딸 말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남자도 포함되어 있음을 조심스럽게 읽지 않으면 안된다.

그녀에게 남자란 단 한번의 동침만으로 영원히 그녀에게 상처를 남긴 자들의 이름이지만, 그녀가 더 아쉬워하는 것은 44세가 되도록 계속되고 있는 그들의 부재이다. 그녀를 미혼모로 만든 자들, 미혼모라는 부정한 여자로 만들어 부모로부터 그리고 딸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게 하는 자들을 그녀는 끝내 미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밀과 거짓말>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왜 서로 반목하는가를 탐구하여 그에 대한 해법을 제공하고 있는 영화다. 그 원인을 마이크 리 감독은 어른들의 고질적인 습성인 비밀과 거짓말에서 찾는다. 따라서 이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방법까지 귀뜸해주고 있다.

사랑 때문에숨겨 놓았던 비밀, 사랑 때문에 속였던 거짓말을 스스로 털어 놓고 교정하라는것이다. 선의의 거짓말보다 진실이 더 힘이 있다. 진실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사랑임을, 자신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타인을 구한다는 것을 이 영화는 감동 있게 그려낸다.96 깐느 영화제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여우주연상, 국제 비평가상 수상작이다.

<채명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