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트시스템(일본)>
세계 각국의 워드프로세서 시장에서 고르게 70%대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MS워드」가 단 2개국에서만 고전하고 있는데 그 나라가 바로 일본과 한국이다.
MS의 시장 과점을 저지하고 있는 기업은 한국의 한글과컴퓨터와 일본의 져스트시스템이라는 두 독보적 존재이다. 한글과컴퓨터의 「한글」과 져스트시스템의 「이치타로」 시장점유율은 각각 자국내 70%대를 상회하고 있다. 「이치타로」는 85년 발표이후 95년말까지 10년동안 정품만 4백만개가 팔리는 대기록을 세웠다.
져스트시스템은 『일본의 보배』, 나아가서는 『아시아의 진주』로 불리고 있다. 알다시피 져스트시스템은 90년대 이후 한글과컴퓨터와 같은 아시아계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경영 또는 마키팅 모델이 돼왔다. 그 이유는 져스트시스템이 단지 자국어 워드프로세서에서 뿐아니라 스프레드시트, 데이터베이스, 그래픽스 등 다른 데스크톱 패키지에서도 당당하게 MS, 로터스와 같은 미국기업들과 당당하게 겨룰수 있는 기술과 제품과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져스트시스템은 현재 간판제품인 워드프로세서 「이치타로(一太郞)」,그래픽스 「하나코(花子)」,스프레드시트 「산시로(三四郞)」,일본어 관계형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 「고로(五郞)」,그룹웨어 「오피스 매니저」,전자출판시스템 「다이치(大地)」등 다양한 패키지 제품군을 가지고 있다. 이들 패키지를 밑에서 받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일본어처리시스템이 「ATOK」이다.
져스트시스템의 창업자이자 최고 경영자인 우키가와 가즈노리(將川和宣)사장은 최근 컴퓨터 전문지 「PC위크」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MS가 주도해온) 슈트(suit) 시대는 끝났다!』라고 말하고 새로운 전략을 통해 MS 제압을 선언함으로서 일본열도를 들끌게 했다.
새로운 전략이란 져스트시스템의 소프트웨어 뿐아니라 협력사나 경쟁사들의 패키지들도 자유롭게 통합할수 있는 「컴포넌트웨어(Componentware)」라는 개방형 환경의 구현이었다. 이를 보다 구체화한 것이 「JOCA」, 즉 져스트시템 개방형 컴포넌트 아키텍처이다. 모든 기능을 모듈단위로 컴포넌트화해서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사용자가 자유롭게 선택케 한다는 계획이다. 이때 협력사나 경쟁사들은 JOCA규격만 준수해주면 된다. 따라서 사용자는 이를테면 A의 문서편집기 기능, B사의 철자검색기, C사의 한자사전 등을 마음대로 조합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상은 MS가 통합패키지 「MS오피스」에서 구사한 패키지통합 방식의 제품전략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져스트시스템은 JOCA규격을 만족하는 통합 소프트웨어 개발환경 「메트로플러스 알파」를 최근 발표했다.
「메트로플러스 알파」는 「이치타로」나 「하나코」 등을 통해 MS처럼 전형적 패키지 위주 제품전략을 구사해온 져스트시스템이 또다른 차원의 기업적 승부수를 던진 작품으로 풀이되고 있다.
져스트시스템은 현재 직원 9백명(96년 기준)에 매출액은 2백30억엔(95년기준)에 이르고 있다. 이 규모가 일본 컴퓨터 업계에서 어떤 위치인가에 대한 비교자료는 없지만 일본 소프트웨어 패키지 업계 1위인 것만 확실하다.
현재 도쿠시마에 본사와 개발본부 두고 있고 도쿄, 오카야마, 후쿠오카, 마쓰야마 등 일본 전국에 개발연구소를 두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본부와 토쿄 연구소에는 자연어처리, 음성인식기술 등을 담당한 전문 연구센터가 부설돼 있다. 지사망은 도쿄,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삿포로 등 거의 모든 대도시에 분포돼 있다. 최근에는 이 회사의 미래 제품방향을 암시해주는 져스트시스템과학연구소가 도쿄에 설립됐다. 이곳에서는 자연과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지적활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게 된다.
져스트시스템은 또 지난 3월 인터넷 온라인서비스 「져스트 넷」을 유료화하면서 10만여명에 가까운 회원을 확보, 인터넷분야에서도 성공적인 출발을 보이고 있다. 오는 2000년경 일본전기통신(NTT)과 공동으로 세계 멀티미디어 온라인서비스 시장을 장악한다는 것이 인터넷 비지니스에 대한 져스트시스템의 야망이다.
져스트시스템은 79년 7월 당시 30세이던 우키가와가 28세의 아내 하시모토 하스코와 공동 창업했다. 도쿠시마(德島)市에 있는 처가댁 응접실이 사무실이었고 집기로는 기존에 있던 응접세트와 새로 들여놀은 PC 한 대가 전부였다. 그와 그의 아내는 아이엔(愛媛)현에 소재한 국립 아이엔대학 공학부 전기공학과 동기동창 관계였다.
두사람이 져스트시스템을 창업키로 한 것은 78년 도시바가 발표한 일본 최초의 워드프로세서 「JW10」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무려 6백30만엔을 홋가하던 이 제품은 그러나 가나와 한자를 혼용하는 일본어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채 가나만을 입출력할 수 있는 반쪽짜리 워드프로세서였다. 그들의 목표는 완전한 일본어 처리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이같은 사실을 직시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 졸업후 우키가와는 도시바의 계열 니시시바(西芝)전기에서 제어계측 엔지니어로 근무중이었고 아내 하시모토는 현 일본유니시스의 전신 다카치오 바로스에서 프로그래머로 근무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79년 4월 니시시바전기를 퇴직한 우키가와는 오사카의 도시바 계열 PC대리점에 무보수로 취직해서 2개월간 영업과 납품전표 관리 등을 익히며 경영수업을 쌓았는데 이는 져스트시스템의 성공을 자신한,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창업후 우키가와는 2년동안 연구와 개발활동에만 전념, 82년 드디어 그와 그의 아내가 그토록 소망했던 일본 최초의 PC용 일본어변환처리시스템 「ATOK」을 발표, 일본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그의 장인이며 현재 져스트시스템의 회장인 하시모토 아키라의 재정적 지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ATOK」은 키보드를 통해 가나와 한자를 함께 입력할 수 있는 획기적인 소프트웨어였다. 「ATOK」의 성공은 우키가와로 하여금 져스트시스템의 사장으로서 안식되기 시작했고 그의 행동은 곧 져스트시스템 사장의 행동으로 통했다.
「ATOK」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져스트시스템은 일본 최고의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하겠다는 야심 아래 본격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83년 발표된 것이 「이치타로」의 증조할아버지격인 「JS워드」이다. 이 제품은 NEC98시리즈의 전신 「NEC100」에서 작동하는 것으로서 「ATOK」의 영향력에 힘입어 적지않은 성공을 거뒀다. 이어 84년 IBM 독자기종인 5550워크스테이션용 「JX워드」를 내놓았고 85년 2월에는 「이치타로」의 아버지격인 「타로(太郞)」가 발표된다.
「타로」는 90년대 초반까지 일본 PC업계를 평정한 NEC98시리즈용으로서 져스트시스템이 기업적 틀을 갖추게하는 상업적 성공을 거둔 제품이다. 그런데 「타로」가 발표되자마자 져스트시스템은 지적재산권 파동에 말렸다. 「타로」라는 이름이 산요전기가 공급하는 전기청소기의 상품명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져스트시스템은 「타로」에 일본 최고라는 뜻의 이치(一)라는 말을 붙인 새로운 이름의 제품 즉 「이치타로」를 내놓게 된다. 「타로」가 발표된지 6개월만이었다. 져스트시스템은 그러나 「이치타로」를 내놓으면서 단순히 이름만 바꾼 것은 아니었다. 내부적으로는 엄청난 개념변화를 시도했는데 그것이 바로 워드프로세서 엔진에서 「ATOK」을 분리해낸 것이었다. 즉 「ATOK」을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에만 묶어들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프로그램으로 모듈화해서 다른 응용소프트웨어 이를테면 그래픽스나 스프레드시트 등에 활용해보자는 의도였다.(한글과컴퓨터도 이같은 전략을 그대로 받아들인바 있다) 따지고보면 져스트시스템은 이때부터 「하나코」나 「산시로」「고로」등의 제품 개발을 구상하고 있었던 셈이다.
87년 「이치타로3.0」의 성공에 힘입어 져스트시스템은 도쿠시마 역부근에 처음으로 4층짜리 자체사옥을 갖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직원도 1백60명이나 됐고 매출액은 40억엔대를 육박하고 있었다. 판매에서도 거대기업 도시바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데 이어 시장점유율에서도 50%를 상회했다.
행운의 여신은 그러나 져스트시스템에게 마냥 미소를 보내지만은 않았다. 89년 발표된 「이치타로4.0」이 화근이었다. 져스트시스템은 버전 4.0에서 그림인페이스(GUI)를 채택한 자체 실행 환경인 「져스트윈도(JW)」를 독자개발, 추가했다. JW의 윈도 개념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3.0」이 발표되기 전의 일이었다. 바로 이 JW의 버그 때문에 져스트시스템은 버전 4.0에 대한 대규모 리콜에 직면했다. 90년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확장메모리(EMS)기능을 채택한 버전4.3으로 난국을 수습하려 했지만 결국 버전4.x는 져스트시스템에게 처음으로 처철한 실패를 안겼다. 이 실패는 89년부터 92년까지 4년간 매출신장률을 극심한 정체로 몰고가는 계기가 됐다.
93년 4월 져스트시스템은 악몽을 딛고 MSDOS를 지원하는 「이치타로5.0」에 이어 같은 해 11월 「윈도3.1」용 「이치타로 5.0 포 윈도」를 잇따라 발표했다. 또 와신상담하면서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그래픽스 「하나코」, 스프레드시트 「산시로」 등 관련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95년 「윈도95」용 버전 6.0에 이어 져스트시스템은 96년 우키가와 사장이 인터뷰에서 밝혔던 「컴포넌트웨어」전략을 충실하게 적용한 「이치타로7.0」을 발표, 제3의 도약과 함께 『제압! MS』를 외치고 있다.
<서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