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더 오브 슬립」은 소설 같은 영화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영화가 소설같이 만들어지는 경우란 그리 많지 않다. 왜냐하면 소설은 소설다워야 하듯이 영화는 영화다워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장르의 문학작품을 영화로 만들든 그것이 일단 영화가 될 거라면 철저히 영화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요셉 빌스마이어는 「브라더 오브 슬립」을 소설 같은 영화로 만들었을까. 때로는 영화 속의 소설적 요소가 관객을 색다른 감동으로 이끌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속의 영화적 요소가 독자를 신선한 세계로 이끌 듯이.
우리는 아주 아름다운 경치 앞에서 그림 같다고 감탄한다. 눈앞에 펼쳐진 경치에서 그림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定型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 소설의 정형을 보아버리면 우리는 또 감탄하게 된다. 인류는 영화가 탄생하기 이미 수백년 전부터 소설을 보아오지 않았던가. 화면에 펼쳐지는 세계가 오래전의 독서체험을 되새기게 하고 기억을 환기시키면서 푸근한 감상으로 이끄는 것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영화가 잘 만들어진 경우에 한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브라더 오브 슬립」은 그런 면에서 아주 썩 잘 만들어진 영화다. 우선 시종일관 화면에 펼쳐지는 영상이 쉽게 볼 수 없는 수려한 것들이다. 장소를 잘 헌팅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감독 자신의 고집스런 앵글과 촬영이 산보다 더 산답고 물보다 더 물다운 자연을 연출해내고 있다.
인물들은 어떤가. 자연의 소리를 느낄 수 있는 영묘한 재능을 타고난 엘리어스, 그를 운명적으로 사랑하는 엘스베스, 음악에 절망해 목을 매는 오스카, 마을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미셸 등등. 사건진행과 이야기 변화에 따라 이들의 성격이 변하는 게 아니라, 이들의 뚜렷한 성격이 사건과 이야기를 끝없이 야기하는 형식으로 이 영화는 만들어졌다.
그만큼 이 영화는 고전소설에서처럼 성격묘사에 치중했고 그 점이 성공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가 소설스러웠던 건 예술과 사랑이라는 「관념적 주제」를 정면으로 아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너무 많은 개성적 인물과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담으려 했던 나머지, 지나치게 축약된 부분들이 있어 이 영화의 흠으로 남지만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감독의 음악적 재능과 뮌헨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장중한 협연, 그리고 안드레 아이저만의 파토스적인 오르간 연주연기는 이 영화가 「가을의 전설」 「영혼의 집」 「순수의 시대」 「센스 앤 센스빌리티」 등 이러저러한 소설적 영화들과 분명히 구별되게 하는 요소이다.
〈구효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