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특집] 혼수상품으로 빠지지 않는 세탁기

내수 보급률이 1백%에 육박하고 있는 세탁기는 냉장고, 컬러TV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성숙기 제품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93년 1백56만여대를 정점으로 국내 세탁기 수요는 94년엔 1백41만대, 95년엔 1백35만여대로 매년 조금씩 위축되고 있으며 올들어서도 상반기중 60여만대(수입품 포함)가 팔려 지난해 수준을 간신히 유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렇지만 작년말부터 시작된 불황이 올해까지 지속되고 있고 세탁기의 성수기가 가을철인 점을 감안할 때 각각 10∼15% 가량 판매량이 감소한 컬러TV,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에 비해 세탁기시장은 그나마 불황국면을 잘 견뎌내고 있는 셈이다.

하반기들어 가전3사는 혼수 대목을 겨냥, 지난달부터 일제히 신제품을 출시하고 상반기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짙게 드리운 불황의 먹구름으로 인해 올 연말 내수시장 규모는 작년수준인 1백35만대(매출액 기준 총 6천억원)수준을 유지하거나 소폭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면 세탁기 수출은 전자제품 수출이 전반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지난해의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기존 주력시장인 동남아에서 입지가 확대되고 중남미, 중동, 러시아 등 신규시장 개척이 더욱 활발해지면서 상반기중 수출실적은 1억2천여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0%이상 증가했으며 특히 부가가치가 높은 전자동 세탁기의 실적이 50%이상 신장, 그동안 수출을 주도해왔던 2조식 세탁기를 대신해 주력제품으로 부상하고 있다.

하반기에 들어 세탁기 수출은 상반기보다 신장세가 다소 둔화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으나 올 연말까지는 작년보다 최소 25% 이상 증가된 2억8천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수시장의 소강상태와는 아랑곳없이 가전업체들의 신제품경쟁은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LG전자가 세탁조회전방식의 「통돌이」를, 삼성전자가 97년형 「손빨래」세탁기를, 대우전자는 공기방울세탁기 「돌개물살」을 각각 출시하고 시장점유율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한편 국내에서 유일하게 봉세탁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동양매직도 가전3사의 예봉을 피해 내달초 신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올해 출시된 가전3사 세탁기 신제품은 공통적으로 기본성능 향상을 추구하면서도 각사별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현저하게 차별화됐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지난해 회전날개에 3개의 미니보조날개를 채용한 카오스세탁기 「세개더」를 출시, 세탁균일도 향상을 강조했던 LG전자는 올해 세탁조 회전방식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세탁조회전방식을 채용함으로써 세탁조와 회전날개가 엇갈리게 회전시켜 비벼빠는 효과를 발생시키고 헹굼과정에서도 빨래를 강력하게 흔들어 줌으로써 세제찌꺼기, 땟물 등을 더욱 깨끗하게 빼준다는 아이디어이다.

또한 세탁조가 회전함으로써 세탁조 상단에까지 강한 수류가 전달되어 엉킴이 줄어드는 효과와 함께 세탁시간 경과에 따른 세탁물의 엉킴 정도를 분석하여 회전날개를 불규칙하게 회전시켜 「엉킴 방지물살」을 발생시키고 있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선보인 세탁조 회전방식은 앞으로 소비자들로 부터 평가를 받겠지만 그동안 세탁조를 고정시키고 회전날개와 수류를 중심으로 진행되온 국내 세탁기 연구에 새로운 자극제로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의 97년형 「손빨래」세탁기는 회전날개에 세탁봉을 결합한 애지펄(Agipul) 방식의 성능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탁조 중앙에 불규칙 수류를 발생시켜 엉킴을 해소하기위해 채용한 세탁봉(빨래손)의 지름을 1 늘리고 세탁봉에 부착된 3개의 보조날개를 6개로 증가시켰다. 여기에 헹굼과정에서 세탁조내 전체에 강력한 샤워물살을 공급해주는 전자식 「헹굼샤워장치」를 새로 추가, 세탁력과 함께 헹굼성능향상을 강화했다.

또한 세탁봉의 내부구조를 이중 나선형으로 변경, 세탁봉이 상하로 오르내리는 횟수를 기존 제품보다 50% 늘려 회전날개방식의 고질적인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엉킴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줄기찬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밖에 기존 제품에 2개가 채용됐던 낙하물살 출구를 4개로 증가시켜 회전날개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세탁조 상단의 세탁균일도를 증대시키고 세탁물을 골고루 뒤집어주는 효과가 발생하도록 했다.

지난 91년 「공기방울세탁기」를 발표한 이후 기본성능과 관련 뚜렷한 변화를 보이지 않았던 대우전자는 2년여간의 수류연구를 토대로 비대칭 회전판이 채용된 공기방울세탁기 「돌개물살」을 출시했다.

대우전자가 처음으로 시도한 비대칭 회전판은 세탁조 내부에 입체물살을 형성시켜 세탁 사각지대를 없애면서 동시에 엉킴도 해소시켜 세탁력을 향상시키기위한 아이디어 제품이다.

수류연구를 바탕으로한 대우전자의 「돌개물살 세탁기」 는 지난 93년 삼성전자가 로스비이론을 응용해 개발한 「퍼펙트」세탁기와 LG전자가 카오스이론을 적용한 카오스세탁기 「팡팡」과 견줄 만한 것으로 향후 세탁기수류 연구에 활력소가 될 전망이다.

또한 대우전자는 이 비대칭 회전판 위에 공기방울 분사구 6개를 추가,공기방울로 인한 세탁력 증대를 꾀했다.

한편 이러한 기본성능 측면의 변화와 함께 부가기능 측면에서도 다양한 아이디어가 채용됐다. LG전자는 「통돌이」세탁기에 「홈드라이세탁」기능을 채용, 울, 실크 등 손상되기 쉬운 옷감을 손상없이 세탁할 수 있도록 했고 삼성전자는 물에 뜨는 보푸라기나 이물질을 걸러내는 「찌꺼기」거름장치와 세탁조내 조명등을 채용, 편리성을 개선했다.

대우전자 역시 「찌든세탁 코스」와 인체공학적 설계를 적용한 도어손잡이 등을 선보였다.

한동한 요란한 부가기능을 과시했던 가전업체들이 이처럼 세탁 및 헹굼력 향상과 엉킴해소라는 기본성능에 기술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은 세탁기의 대용량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체수요가 80%에 육박하면서 세탁기의 주력 모델은 지난 95년에 8급이 주력으로 부상하고 다시 올들어서는 10급의 판매비중이 40%를 넘을 만큼 급속히 주력제품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처럼 대용량제품이 선호되고 세탁기에 투입되는 세탁물이 많아짐에 따라 소비자들이 세탁력과 엉킴문제를 가장 큰 불만사항으로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탁조가 커짐으로써 세탁력 향상의 열쇠는 세탁물 전체에 세탁력을 고루 미치게 하는 세탁균일도에 달려 있다.

세탁조회전, 애지펄방식, 비대칭 회전판 등 가전3사가 전통적인 회전날개방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회전날개에만 의존하고 있는기존 방식만으로는 세탁력과 엉킴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올들어 세탁용량 10급 제품이 주력제품으로 자리잡고 있으나 세탁기 대용량화 추세는 당분간 그 한계를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90년대들어 세탁기시장은 보급률이 80%가 넘으면서 성장세가 한풀 꺽였으나 주력모델의 용량이 매년 1 정도씩 늘어날 정도로 대용량화 경쟁이 가속화됐다. 92년엔 8, 93년엔 9, 10급이 속속 등장하며 「통키우기」 경쟁이 달아올랐다. 94년엔 들어선 대용량화 경쟁이 다소 진정되는 기미를 보였으나 95년들어 동양매직이 10.2급 봉세탁기를 출시, 다시 대용량화 경쟁을 재연시켰다.

이어 대우전자가 95년말 11급 공기방울세탁기를 출시하고 올 초 LG전자가 11.2급 카오스세탁기를 내놓고 국내 최대용량을 과시했다. 여기에 조만간 대우전자가 12급 세탁기를 출시할 예정이어서 대용량화가 어디까지 진행될 지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세탁기시장이 대용량화되고 있는 것은 많은 대체수요자들의 현재 보유하고 있는 제품보다 더 큰 용량을 원하는 점과 함께 업체간 지나친 경쟁의식이 상승작용을 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어쨌든 대용량화 추세는 가전업체들로 하여금 기본성능향상과 함께 설치공간을 최소화하면서도 세탁용량을 키울 수있는 「콤팩트화」기술을 촉진시킬 전망이다.

그러나 올해 가전3사가 세탁기의 기본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두드러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물이나 세제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절약할 수있는 「친환경기술」이 등한시 된 점은 전세계적으로 환경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를 고려할 때 다소 아쉬운 점이라고 하겠다.

이미 한계 보급률에 도달한 국내 세탁기시장은 대체수요의 비중이 더욱 커짐과 동시에 향후 시장규모가 연간 1백30만∼1백40만대 가량의 정체국면을 지속할 것이라는 것이 가전업계의 예상이다.

전형적인 성숙기시장에 진입하면서 가전업체들은 그동안 반복해온 가시적인아이디어 경쟁과 제살깎아먹기식 판촉전에 따른 후휴증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 국내 세탁기시장에서의 경쟁은 더이상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가전업체들의 인식과 함께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노력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유형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