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존 모클리와 프레스퍼 에커트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에서부터 오늘날의 펜티엄 프로PC에 이르기까지 지난 반세기 동안 세상의 변화를 주도해온 컴퓨터기술과 첨단 하이테크 문명 뒤에는 밤을 지새우며 노력해온 사람들의 땀방울이 곳곳에 스며 있다.
그중에서도 「슈퍼컴퓨터」로 알려진 거대한 고속컴퓨터를 설계한 컴퓨터 설계사인 시모어 크레이(Seymour R. Cray)는 이같은 신화를 일궈내는 데 일조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슈퍼컴퓨터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1950년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전기공학사 학위를 받은 그는 획기적인 1세대 전자 디지털 컴퓨터인 「유니백 1」(UNIVAC-1)을 연구하면서 컴퓨터 과학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57년에는 한참 후에 세계적인 컴퓨터회사가 된 컨트롤데이터사의 설립을 도왔다. 이 회사를 위해 크레이는 빠른 처리속도로 유명한 대규모 컴퓨터 「CDC 6600」과 「CDC 7600」을 설계했다.
1958년 완전히 트랜지스터화된 슈퍼컴퓨터를 처음으로 개발한 이래 크레이는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슈퍼컴퓨터시장을 석권했다. 그는 72년 컨트롤데이터사를 떠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를 만들 목적으로 「크레이 리서치사」를 설립했다. 그의 회사가 76년에 내놓은 최초의 슈퍼컴퓨터 「Cray-1」은 초당 2억4천개의 계산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점차 「Cray1-M」과 「CrayX-MP」와 같은 연산속도가 빨라진 슈퍼컴퓨터를 개발했다.
1985년 훨씬 더 빠른 시스템을 설계하기 위해 자신의 회사 회장직을 사임한 크레이는 치퍼와폴스에 있는 개인연구소에서 「Cray-2」를 시장에 선보였다. 액체 질소로 냉각된 이 시스템은 초당 12개의 계산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는 병렬처리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든 회로설계의 개척자가 됐다.
그러나 냉전의 종식으로 미국 군부나 공공기관의 초대형 프로젝트에 사용되던 슈퍼컴퓨터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게 되자 크레이리서치사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로 인해 그는 올초 크레이리서치사를 실리콘그래픽사에 매각해야만 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리고 지난 5일 미국 펜로즈커뮤니티 병원 대변인은 『시모어 크레이가 지프차 운전중 머리부상에 따른 합병증으로 새벽에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세상의 변화를 주도해온 탁월한 인물들도 시대의 변화와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