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萬漢 한국산업표준원 연구1부장
「위기가 예견되면 이미 위기가 아니다」라는 역설적인 말이 있다. 제3차 세계대전에 대한 불안은 결국 유엔 중심의 평화체제 구축의 밑거름이 되었다. 지구 온난화, 오존층 파괴 등에 대한 보고서는 전세계적인 환경 운동을 잉태하였다. 이러한 인류의 자정 능력이야말로 역사를 선한 방향으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소프트웨어의 위기」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지 20년 이상이 흘렀다. 그 위기의 정점으로 예측되었던 90년대도 커다란 혼란 없이 지나가고 있다.
하드웨어 생산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게 됨에 따라 사회 각 분야에서 많은 정보 기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를 움직일 소프트웨어 생산은 거의 수작업에 의지하고 있다. 만일 이대로 진행된다면 모든 사무직 근로자가 소프트웨어 생산에 투입되어야만 할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가설이 소프트웨어의 위기론이다. 60년대 말 미국에서 제기된 이 소프트웨어 위기론은 일본, 유럽 및 우리나라에 그대로 전파되었고, 소프트웨어 생산의 자동화를 목표로 한 수많은 연구 프로젝트를 창출하는 이론적 바탕으로 삼았다. 그 중 유명한 것은 미국의 Arpanet 프로젝트, 일본의 시그마 프로젝트 등이다. 최근에 전세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GII 구축 구상도 그 뿌리를 같이하고 있다.
다양한 위기 대응책 중 지속적이고도 확실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소프트웨어 공학 표준화 활동일 것이다. 소프트웨어 공학의 표준화는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국제전기위원회(IEC)가 공동으로 구성하고 있는 정보기술공동위원회(JTC1)의 제7분과위원회(SC7)에서 작업 중에 있다. 이 위원회에서는 소프트웨어의 개발, 유지보수 및 프로젝트 지원 환경에 관련되는 절차, 방법, 도구, 문서화, 품질, 감사, 평가 등에 대한 표준 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위원회에 의해 작성된 대표적인 표준은 프로그램의 구성요소 및 그 표기법 표준, 프로젝트 지원 환경 표준, 소프트웨어 생명주기 참조 모델, CASE툴 선정 및 평가 지침, 소프트웨어 품질보증 표준 등을 들 수 있다. 프로젝트별로 상이하게 적용되는 개발 방법론 및 개발 도구, 소프트웨어 생명 주기에 대해 기업별로 상이한 시각, 적용되는 CASE 툴의 부조화 등이 소프트웨어 코스트를 얼마나 높이고 있는가를 되돌아 볼 때 이러한 표준은 매우 시급한 것이었다. 이 위원회는 지금도 객체 모델링 및 재사용, 소프트웨어 형상관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데이터 교환, 기능 점수 분석 등에 관련된 표준을 작성하기 위하여 국제적인 협동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아직도 소프트웨어 위기로부터 탈출한 것은 아니다. 정보 기술을 활용하는 시장의 규모가 확대되고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요구가 다양하고 복잡해졌으나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정보 기술의 발전은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국내적으로 본다면 그 위기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패키지 소프트웨어는 일부 한글관련 분야를 제외하면 완전히 해외 기술에 의존하고 있으며,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있어도 컨설팅, 감리, 시스템 통합 분야에서 외국 기술력 의존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결국 소프트웨어 위기에 대해 아무런 적극 대처도 하지 못한 우리나라는 소프트웨어의 대외 의존이라는 안이한 방법으로 대처한 꼴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가장 먼저 눈을 돌려야 할 곳이 바로 표준화이다. 표준화를 위해 국가 규모의 거대 프로젝트는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표준화는 산업체의 참여로부터 시작된다. 표준화는 공조 작업을 원칙으로 하므로,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새로이 진입하는 표준화의 협력자에 대해 앞에 놓여진 장벽은 그리 크지 않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관심을 갖는다면 일단 참여하여 표준화작업의 운영방법에 적응해 나간다면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이룩된 성과를 습득할 수 있고 국내외 기술 동향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국제, 국가 표준 제정작업에 기여하는 한편 작업을 통하여 얻어진 노하우는 개별기업의 사내 표준화를 촉진하고 생산성 향상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