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특강] 300mm 웨이퍼 국제 컨소시엄 결성 동향

李大薰 현대전자 메모리연구소 이사

최근 10년 동안 시스템과 연계된 전자부품의 발전속도를 돌이켜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컴퓨터와 밀접하게 관련된 중앙처리장치(CPU)와 기억소자의 제품수명 단축과 가격하락은 그 변화의 정도가 다른 산업계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급속한 변화양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변화양상은 최근 반도체 가격하락의 속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긴요하게 쓰이던 286계열의 PC가 지금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고물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컴퓨터 마니아들에게는 물론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벌써 686계열의 PC가 성큼 다가와 있다는 사실 또한 이러한 변화를 실증하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된다.

기업에서는 물론 가정에서도 의사결정의 기동성과 신속함이 요구되는 시대가 이미 도래한 것이다. 때문에 정보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단순히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정확성과 신속함이 더 중요한 본질이 되고 있다. 신속한 정보획득을 위해서는 정보처리의 신속성, 정보 접근의 용이성이 요구되고 드디어 휴대형 단말기를 등장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 시스템이 필요로 하는 대표적인 요구는 대용량, 소형화, 고속화, 저전력화로 집약된다. 따라서 시스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반도체업계의 최근 제품개발 동향 또한 이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물론 여기에는 부품의 적정가격 유지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아무리 좋은 부품을 만들었다 할지라도 그 가격이 비싸다면 정보 접근의 용이성을 만족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보다 좋은 정보를 보다 싼 값에 공급하는 것이 대중성을 확보하고 대량수요를 촉발하는 중요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의 하나가 반도체 가공에 있어 기판(웨이퍼)의 大直徑化이다. 이는 소자업체들에 있어 반드시 실현하여야 할 명제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 동안 반도체업계는 이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해왔다. 하지만 변화에 따른 위험성, 엄청난 설비투자비, 표준화 활동의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소자 제조업체는 반도체 제조장치업체와 원재료 공급업체를, 또 그들은 소자업체를 쳐다보며 한쪽에서 먼저 움직여주기를 기다려 왔고 소자업체끼리도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몸을 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미국의 관민 합동 연구기관인 세마텍(Sematech)의 주도로 「I300I(International 300 Initiative)」라고 하는 컨소시엄이 발족되어 3백 웨이퍼 가공장비 개발에 대한 공동보조를 취하게 됐다. I300I컨소시엄은 미국 텍사스주 어스튼시에 위치해 있다. 한국에서는 현대전자, 삼성전자, LG반도체 등 반도체 3사가 함께 이 프로그램에 가입하여 올해 7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I300I컨소시엄의 기본취지는 앞서 언급한 대직경화의 장애물을 극복하는데 공동보조를 취하자는 것이다. 또 가공장비가 갖추어야 할 규격의 표준화 제시, 장치 성능에 대한 공동평가, 기판의 표준규격 제시 등을 통해 소자 제조업체들이 원하는 장치 및 소재를 적절한 시기에 장치업체와 소재업체가 공급할 수 있도록 협조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소자 제조업체들은 시행 착오없이 적절한 시기에 원하는 규격의 장비를 구매해 막대한 시설투자에 대한 위험부담을 줄이고, 장비 제조업체들은 개발 초기에 각 수요자가 원하는 개별 규격이 아닌 공동규격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며 장비업체의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이 컨소시엄의 목적은 3백 웨이퍼 시대로 진입하는 데 있어 한쪽은 득세하고 한쪽은 손해를 보게 되는 「Win-Lose」가 아닌 모두가 득을 볼 수 있도록 하는 「Win-Win」 전략을 추구하자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반도체 산업계 전체의 인프라 스트럭처를 시기에 대한 혼란이나 의구심없이 2백로부터 3백로 연착륙시키자는 것이다.

실제 표준화와 규격통일 및 그에 따른 평가는 일련의 정기적인 회의나 13개 회사에서 파견돼 I300I에 상주하게 될 50여명의 직원들에 의해 진행되는만큼 그야말로 국제화된 활동이라 하겠다. 모든 산업계를 통해 이같이 국제적인 컨소시엄이 형성되어 활동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이 가지는 의의는 참으로 크다.

이 컨소시엄에는 미국의 어드밴스트마이크로디바이시즈(AMD), IBM, 인텔, 루슨트테크놀로지스(과거 AT&T), 모토롤러,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등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6개 반도체 회사와 유럽의 SGS톰슨, 필립스, 지멘스, 그리고 대만의 TSMC외에 삼성전자, 현대전자, LG반도체 등 한국의 3개사가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미 일부 회사의 직원들이 파견되어 이들 세계적인 회사의 직원들과 한 조직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는 물론 프로그램 참여자격을 국제적으로나 객관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반도체업계에서 파견된 직원들에 대해 컨소시엄이 만족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반도체업계 관계자들을 가슴 뿌듯하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역사가 일천함에도 불구하고 이같이 세계적인 반도체업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동안 반도체산업을 전략차원에서 국가적으로 육성해 온 정부의 노력, 이에 대한 기업의 호응 및 시의적절하고도 과감한 투자전략, 학계의 인재배출을 위한 노력과 전문 연구 등의 3박자가 어우러진 결과라고 생각된다.

이 프로그램은 1차로 오는 97년 12월까지 18개월간 진행된다. 0.25미크론 급의 장비개발에 대한 성과를 평가한 후 필요하다면 2차로 0.18미크론 급의 장비개발을 진행하게 된다.

국내업체들로서는 지금까지 공동개발의 형태를 취한 반도체 개발사업을 국책과제로 진행한 경험은 있으나 이처럼 세계적인 업체들과 한자리에 모여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같이 일한 경험이 없으므로 이번 기회를 통해 국내 업체는 물론 외국의 유수의 반도체업체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귀중한 경험을 쌓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생각된다.

또한 부수적으로도 세계 반도체 업계의 동향이나 정보를 프로그램 진행과정에서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어 귀중한 정보채널을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도 부여할 수 있으며, 다년간 축적된 세마테크의 기술이나 노하우를 직,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하겠다.

다만 참여의 문호가 열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업체들의 참여가 없는 것이 대단히 아쉬운 점이다. 이는 다분히 세계 반도체업계에서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일본의 정치적인 고려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초기에 소니가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으나 일본내 독자적 컨소시엄인 SELETE 결성 움직임에 밀려 단 하나의 일본업체도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I300I의 문호는 지금도 여전히 열려 있으며 표준화, 3백 웨이퍼 장비평가 결과자료의 공유를 위해 꾸준히 일본측과 접촉하고 있다. 특히 본 프로그램의 표준화 관련회의를 일본에 개방하고 있다.

지난 7월에 미국 샌타클래라에서 열린 표준화 관련회의를 J300(SELETE내의 표준화 담당 워킹그룹)과 공동으로 개최하여 표준화에 대한 1차 의견 교환기회를 가진 바 있으며 앞으로도 상호 지속적 의견 교환을 할 것을 합의한 바 있다.

I300I는 표준화뿐 아니라 앞으로 있을 장비 평가 결과물에 대해서도 일본측 컨소시엄과 상호 공유의 길을 트기 위해 꾸준히 접촉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두 컨소시엄이 협력할 것에 대해서는 일찍이 합의하기도 하였다. 물론 경과는 두고 볼 일이지만 항상 문호개방을 통해 상호협조를 모색하는 것은 I300I 자체의 성공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며 절름발이 컨소시엄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일인 것이다.

본 프로그램의 취지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모두에게 「Win-Win」의 결과를 가져오도록 하는 경쟁 이전 단계(Precompetitive Stage)의 협력이지만 이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하더라도 각 기업의 장래목표 추구와 그 성패 여부는 각자의 몫이다. 성패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컨소시엄에 있는 것이 아니며 각자가 지는 것이다. 결과물 활용의 극대화를 통한 시기 적절한 의사결정과 부단한 노력을 토대로 하여 이번 프로그램 참여를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의 반도체산업의 또 한번의 도약을 이루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