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생각] 빛을 보지 못하는 타이틀들

멀티미디어가 지닌 특성을 얘기한다면 일단 대화형(인터액티브)이라는 것과 이미지나 사운드 등 다매체의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대용량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는 것 등 3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책과 같은 인쇄매체를 통해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표현능력과 기능, 용량을 지녔다는 점이 오늘의 멀티미디어 열풍을 일으키는 주 요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조선왕조실록」 CD 타이틀과 같은 제품은 이같은 멀티미디어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 우리의 문화유산과 접목시킨 훌륭한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타이틀의 대용량 기능을 포함, 멀티미디어의 다양한 기능들을 활용해 오히려 원본보다도 더 생생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수작이라 생각된다.

이처럼 멀티미디어와 우리의 문화유산을 접목시킨 타이틀은 「조선왕조실록」 뿐만은 아니다. 무형문화재들에 대한 CD 타이틀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이같은 노력이 진행되고 있고 그 결과물들도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것 같다.

향후 초고속망과의 연계까지 감안한다면 민간부문의 이러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베이스 구축작업은 대단히 뜻깊고 나라가 할 일을 대신할 것으로 마땅히 박수받아야 할 일로 여겨진다. 박물관이나 서고에 틀어박혀 있기만 했던 우리의 중요한 문화유산들을 대중화시키고 재해석하는 역할들을 훌륭히 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들인 제품들은 세상의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인가.

이들 타이틀들은 보급이나 판매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열심히 만들기는 했는데 사주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들이 너무 없다. 차기 작업의 착수나 발전은 기대하기도 어렵다.

물론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타이틀들을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문제는 함께 균형있게 발전해야 하지 않는가이다.

마치 영화나 다른 장르들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많은 공을 들인 예술성 짙은 작품들이 대중들의 손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여기에도 있는 듯하다.

훌륭한 작업과정을 거쳐 애써 만든 작품들이 대중의 손으로 전달되기는커녕 그냥 묻혀 버리고 마는 것 같다. 세상의 평가는 기약 없이 보류된 상태다.

애국심과 작업에 대한 의미부여로만 만족한 채 더 이상의 별다른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당대에는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후세에야 길이 빛날 작업자로만 만족해야 하는 것인지 제작자나 개발자들은 자조의 마음을 금치 못한다.

공들인 작업에도 불구하고 널리 빛을 보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는 물론 가격이 중요한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오랜 작업과정과 엄청난 투자로 인해 애초에 설정된 가격자체가 대중화와는 아예 거리가 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 조선왕조실록만 보더라도 타이틀의 가격이 5백50만원에 달하고 있다. 가격 자체가 판매불가능 도장을 찍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동안의 엄청난 투자를 감안해 가격이 설정됐다지만 구입하는 사람 입장에서 「너무 비싸다」는 것 말고 무슨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물적, 심적 격려와 도움 속에서 작업이 진행됐다면 막대한 투자비의 일부는 상쇄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작, 판매하는 사람의 부담을 처음부터 덜어줄 수 있었다면 가격도 좀 더 대중화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현재까지의 경험으로 비춰 「지금 작업 중인 작품은 빛을 보기 어렵다」는 예감 속에서 일을 할 사람은 극히 적을 것이다. 현재의 실패를 벗삼아 훌륭한 작품보다는 돈이 되는 작품만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논리다.

누가 보더라도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김석은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