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번뜩이는 아이디어 백미 데니스는 통화중

소설을 쓰다 보면 한 개의 단순한 아니디어가 그대로 소설로 이어질 때가 있다. 이럴 때는 거침 없이 소설이 쓰여진다.쓰는 일 자체가 신이나고 재미있다.준비 과정도 많은 부분 생략된다.취재니 구성이나 자료수집 같은 번거로운 일이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하지만 그런소설이란 소품에 그칠 경우가 대부분이다.

할 셀웬 감독의 <데니스는 통화중>이란 영화를 보고 났을 때 한가지 아이디어로 썩 멋스런 영화를 단숨에 만들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아닌게 아니라 이 영화는 고작 60만 달러의 제작비와 23일의 촬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내용이나 스케일을 보더라도 결코대작이라고는 할수 없다. 오히려 단일한 주제를 매우 효과적인 기법으로 관객에게 인상적으로전달할 수만 있다면 셩공한 영화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데니스는 통화중>이란 영화는 일곱 명의 배우만이 반복해서 등장한다.서사적인 요소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경쾌한 코미디류다.하지만 전화라는 문명의 이기를 통해 후기산업사회를 사는 개인의 소외를 다루었다는 점에선 만만치 않은 주제의식이 드러난다.

그저 바쁘다는 이유로 일곱명의 등장인물들은 뻔질나게 전화기에만 매달릴뿐 만나는 법이 없다. 허구 헌날 전화기에만 매달려 살기 때문에 서로의일상은 지나치리 만큼 상세하게 꿰고 있다.자주 만나야 된다는 당위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막상 만나려고 하면 불안하고 귀찮고 부담스러워진다.이미 만남이라는 형식 보다는 전화라는 형식이 훨씬 낯익고 편안해져 버린 것이다. 영화가 다 끝날 때까지 누가 누군가를 만나는 경우란 데니스와 마틴 두 명 뿐이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우리도 한 달에 천원이면 전화국에다 신청할 수 있는 「통화 중 대기」 기능이 이 영화에선 매력적인 위력을 발휘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웃음과 페이소스를 자아낸다. 전화라는 전기제품을 매개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 그다양하고 기상천외한 상상이 이 영화에선 현실로 드러난다.

줄곧 웃음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이 영화르 보는 동안 관객석에서 핸드폰이라도 울린다면그야말로 금방 혼란에 빠져 버릴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장점은 일상에 꼭꼭 닫혀버린 우리 자신을 실존적 자화상을심각하게 되돌아 보게 한다는 것이다.

<소설가 구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