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물 고분자 디스플레이 기술

21세기에는 TV가 어떤 형태일까. 벽이나 천장에다 걸어놓거나 벽 한쪽이 모두 TV로 이루어져 영화처럼 TV를 본다면 어떨까. 이러한 상상이 곧 현실로 다가온다고 하면 믿지 않을 것이다. 1987년 이스트만코닥사가 알루미나퀴논이라는 색소를 이용해 만든 소자에 전압을 걸어 빛이 나오는 것을 발견한 이후 유기물에서의 전기발광(Electroluminescene)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이러한 상상이 상상으로만 그치지 않고 있다.

앞으로 디스플레이는 정보사회의 열매를 획득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가 되고 있다. 종래의 브라운관은 경박단소, 저소비전력, 대형 평면화를 요구하는 멀티미디어용 디스플레이로 한계가 있다. 가볍고 소비전력이 낮은 장점으로 상품화가 급진전되고 있는 액정표시장치(LCD)는 멀티미디어용으로 적합하지만 대형 스크린 등으로 이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 현재 일본이 LCD를 이용한 대형 스크린을 생산하고 있으나 두께가 1m나 되고 너무 커 실용성이 없다. 노트북PC용 대형 컬러LCD는 개당 1백만원이 넘고 전력소모가 커 배터리로는 몇시간 정도밖에 사용할 수 없는 실정이다. 또 수광 소자여서 충분한 밝기를 내지 못해 대낮에는 보기가 어렵고 시야각이 좁아 일정한 각도에서만 볼 수 있으며 응답속도가 낮은 단점이 있다. 이에 비해 전기 발광표시장치(ELD)는 LCD와 달리 발광 소자여서 밝기가 매우 우수하고 응답속도도 1마이크로 초(10) 이하로 빠르며 얇은 두께를 가진 가벼운 대형 화면제작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ELD에는 전류가 흐르면서 발광하는 경우(대부분의 유기물, 고분자 발광물질이 해당;전압이 낮다)와 전류는 거의 흐르지 않고 전기장에 의해 발광하는 경우(대부분의 인광물질의 경우가 해당;전압이 높다)가 있다. ELD 연구는 발광의 기본 소자(발광 다이오드;LED)에 대해 많이 진행되고 있고 이 연구결과는 디스플레이 개발에 활발히 응용되고 있다. 인광물질(Phosphors) 계통의 무기물로 이루어진 전기 발광소자는 구동전압이 교류 2백V 이상이어야 하고 소자의 제작방법상 진공 증착으로 이루어져 대형화가 어렵다.

특히 청색 발광이 어려우며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유기물로 이루어진 발광소자는 유기물의 합성경로가 다양하고 합성된 분자의 성질이 그대로 나타나 청색 발광이 용이해 풀컬러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유기물로 이루어진 발광소자는 기계적 강도가 낮고 열에 의해 결정화가 일어나는 단점이 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고분자를 이용하고 있다. 고분자는 저분자 유기물에 비해 기계적 강도가 좋고 열안정성이 높으며 유기물과 같이 합성경로가 다양하여 활발히 연구됐다. 1990년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이 폴리파라페닐렌비닐렌이라는 파이 공액 고분자(-conjugated polymer)에서 전기발광을 발견하여 공액 고분자를 이용한 발광이 가능하게 됐다.

파이 공액 고분자는 일중 결합(혹은 시그마 결합)과 다중 결합(혹은 파이 결합)이 교대로 있는 화학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들 화학결합에 의해 전자가 편재화하지 않고 결합 사슬을 따라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성질을 갖고 있다(이를 π전자라 부름). 또 반도체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어 전기장 아래에서 발광 특성을 나타내는 데 적합한 물질이다. 그만큼 고분자의 공정 및 기계적 성질의 장점과 반도체의 우수한 광학적, 전자적 성질이 잘 배합된 새로운 종류의 반도체라 할 수 있다. 파이 공액 고분자를 이용하는 전기 발광소자는 낮은 직류 구동전압, 박막형태 가능, 발광빛의 균일성, 용이한 패턴형성, 다른 발광소자에 견줄 만한 발광효율, 가시영역에서의 모든 색상 발광 가능, 구부릴 수 있는 형태의 소자 제작 가능, 프린팅 혹은 롤링에 의한 막 제작기술 및 대량생산 가능 등의 큰 장점을 갖고 있다.

전기 발광소자 구조 중 발광물질이 두 전극사이에 삽입되어 있는 형태가 가장 간단한 것이다. 발광물질이 고분자인 경우나 유기물을 고분자에 분산시킨 경우에는 스핀 코팅 등이라는 방법을 써서 박막을 만들 수 있어 소자 제작의 공정이 매우 간편하다. 보통 가시광 영역에서 발광된 빛을 손실 없이 투과시키는 투명한 전극을 투명한 기판 위에 입히는데 주로 인듐주석산화물(ITO) 기판이 사용되고 있다. 그 위에 발광물질을 스핀 코팅 등의 방법으로 박막을 형성하게 한 뒤 알루미늄, 마그네슘, 칼슘, 인듐, 은 등의 금속 또는 금속합금을 진공 증착하여 입히게 된다.

전기 발광의 기본 메커니즘은 소자의 금속 전극을 음극으로 하고 투명 전극을 양극으로 하여 전압을 가하는 것으로 음극에서는 전자가 발광물질로 주입(Injection)이 되고 양극에서는 전자가 발광물질로부터 주입이 되어 정공이 남게 된다. 이때 소자의 전극과 발광물질 사이에는 에너지 준위 차이에 의한 에너지 장벽이 존재하고 이 에너지 장벽을 통과한 전자만이 발광물질 혹은 양극에 주입된다. 일반적으로 음극쪽의 에너지 장벽이 높아 전자의 주입이 어려워지므로 전류의 흐름에 정류성(Rectification)을 갖는 다이오드 특성이 나타난다. 전자 및 정공을 가리키는 운반자들이 고분자내에서 살창(Lattice)과 상호작용을 하여 완화되면서 각각 음성 및 양성 폴라론이라는 전하운반자(Charge Carrier)로 되어 상대편 전극을 향해 이동하다가 서로 만나게 되면서 여기자(Exciton)를 형성하게 된다.

이때 형성되는 여기자는 전자의 배열상태(스핀 상태라고 부름)에 따라 일중항 여기자와 삼중항 여기자가 존재하게 되는데 이중 일중항 기자가 소멸될 때 내는 빛이 전기발광이다. 삼중항 여기자에서도 인광 등의 빛이 발생할 수 있지만 그 확률이 매우 낮고 거의 모두가 비발광 소멸을 하므로 발광에 기여하지 않는다. 일중항 여기자가 발광소멸할 때 나타나는 빛은 폴라론의 밴드 갭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갖게 되고 이 에너지에 의해 빛의 색이 결정되며 밴드 갭이 클수록 낮은 파장의 빛을 내게 된다. 밴드 갭은 발광물질의 종류에 따라 달라 물질마다 고유의 빛을 나타내게 된다. 유기물 혹은 공액 고분자에서 발생되는 빛의 영역은 4백10의 청색에서부터 7백60의 적외선까지에 걸쳐 가시광선 스펙트럼 영역의 모든 색깔을 나타낼 수 있으며 색의 3요소인 빨강, 파랑, 초록의 색을 나타내는 발광물질을 섞어서 백색광을 만들 수도 있다.

소자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하는가(발광효율이라고 부름)는 통상 외부 양자 효율(발생되는 광자수/주입된 전자수로 표시)로 표시된다. 이론적으로 전기발광소자가 낼 수 있는 최대 양자 효율은 일중항 여기자와 삼중항 여기자의 생성비율이 1대3이므로 일중항 여기자가 모두 발광에 쓰인다고 가정하며 25%인 것으로 계산된다. 최대 양자 효율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이 여러가지 있으며 전자의 주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음극을 칼슘 등과 같이 가급적 일함수(Work Function)가 작은 금속을 쓰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금속은 공기중 산소에 민감하여 부식되는 문제가 있으므로 일함수가 작으면서 공기 중에 안정한 금속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한 연구과제이다.

이외에도 전자 친화력이 큰 발광물질을 개발하여 사용하면서 공기중에 안정한 금속전극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혹은 전자나 정공의 수송이 원활한 전하수송층을 발광층과 전극 사이에 삽입하거나 발광 특성이 서로 다른 고분자를 블렌드 하는 방법 등으로 발광 효율을 더욱 증가시킬 수 있다. 발광 효율이 낮은 경우에는 발광에 쓰이지 않는 많은 여기자들이 비발광 소멸을 하게 되는데 이들이 거의 열로 발생되므로 소자의 성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재 유기물 혹은 고분자 전기발광 소자에서 얻어진 양자효율은 약 2∼3% 정도(3∼4 lm/W 정도)로 무기물 발광소자의 발광 효율에 비해 높고 밝기가 최고 약 10만cd/ (당 칸델라;칸델라는 밝기 단위) 정도로 매우 밝아 노트북PC, 특히 LCD의 백라이트(Back-light), 자동차 계기판 등에 적합하다.

고분자를 이용한 발광소자의 구동전압은 노트북PC의 필요 밝기인 1백cd/를 발생시키는 데 3∼4V 정도가 필요하며 전류는 마이크로 암페어 이하이면 충분하다. 1만cd/㎡를 발생시키는 데 불과 약 7V 정도가 소요되고 보다 더 큰 밝기의 경우에도 10V 내외의 전압으로 발생시킬 수 있어 배터리로도 구동이 가능하다. 고분자 발광소자가 디스플레이로 실제 응용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소자의 수명이다. 소자의 수명을 좌우하는 요인으로 발광 고분자의 열안정성 및 순도, 전극과 고분자 사이의 계면상태 등이 매우 중요하며 소자 제작환경도 고성능 소자를 얻기 위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현재 알려진 최대 수명은 1백cd/의 밝기를 유지하면서 5천시간 이상 지속되는 정도이다. 이 정도의 수명은 비교적 긴 수명을 요하지 않은 장난감, 광고용 디스플레이 상품 등에 쓰이기에 부족함이 없으나 실제 디스플레이로 쓰이기에는 아직 부족한 수명으로 최근에는 밝기를 높이면서 소자의 수명도 늘리는 방법으로 펄스 구동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 고분자를 이용한 박막 트랜지스터가 개발되고 기판을 플라스틱으로 사용함에 따라 구부릴 수 있으면서 초대형, 초박형 디스플레이의 개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유기물 트랜지스터는 사이즈가 큰 경우 무기물 트랜지스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만들기 쉽고 낮은 온도에서 제작이 어렵지 않으며 불순물에 덜 민감하므로 비용이 적게 들어 보다 더 싼 디스플레이를 제작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된다. 게다가 아주 근래에는 플라스틱 박막 트랜지스터의 속도가 실리콘트랜지스터에 거의 육박할 정도로 많은 진전을 보이고 있다. 이같이 고분자 발광소자와 고분자 박막 트랜지스터의 상용화 개발노력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볼 때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초대형 초박막 TV 스크린 시대가 예상보다 빨리 다가와 3백억달러 이상 되는 디스플레이시장을 지배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태형

1977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화학과 졸업

1978∼1981 KIST 고분자 연구부 연구원

1981∼1986 미국 텍사스공과대학교 대학원 물리화학 이학박사

1986∼1989 Univ.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PostDoctoral Research Associate

1989∼현재 한국전자통신연구소 기초기술 연구부 책임연구원(유기물 디스플레이 연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