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영화 스크린의 가로와 세로비율은 4 대 3이었다. 그 후 TV가 등장하자 영화업계는 영화를 TV와 차별화하기 위해 화면비율을 16 대 9로 바꾸었다. TV가 각 가정에 거의 한대씩 보급된 지금까지도 영화가 나름대로 영역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이것도 하나의 요인이 됐을 것이다.
TV도 초창기에는 화면이 작아 10인치 남짓했으나 80년대 후반 들어 20인치, 최근에는 29인치가 주류를 이룬다. 냉장고의 경우도 대형이면 사용하기가 쉽고 또 그것이 눈에 띄는 장소에 있기 때문에 일종의 과시효과도 작용해 덩달아 대형화했다. 세탁기의 대형화는 더 빠르게 진전됐다. 지난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6㎏급 이하의 세탁기가 주류를 이뤘으나 최근 국내의 한 가전업체가 12㎏급 세탁기를 출시했다. 이제 냉장고나 세탁기의 대형화는 극에 달한 것 같다.
대형 가전제품은 소형보다 유용하다. TV의 화면이 크면 작은 것보다 아무래도 현장감이 넘친다. 냉장고도 이왕이면 큰 것이 사용하기 쉽다. 세탁기도 담요나 이불 등 대형 세탁물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큰 것이 작은 것보다 낫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소비자도 이러한 제품을 원한다.
그렇지만 최근의 가전제품 대형화는 가전업체의 지나친 판매경쟁으로 인해 각 가정에서 필요로 하는 적정한 크기를 넘어선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완전경쟁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제품가격이나 성능, 애프터서비스 등 가운데 한가지는 확실히 뛰어나야 한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은 성능이다. 성능도 부가적인 성능이 아니라 핵심적인 것으로서 그것의 향상이 요구되는 것이다. 화면 끝을 조금 늘린 TV나 필요 이상으로 용량을 키운 세탁기, 냉장고 등과 같은 것은 제품 개발방향 자체를 올바로 잡지 못한 것으로, 에너지를 쓸 데 없는 곳에 낭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품으로는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은막의 비율을 달리하는 통찰력이나 획기적인 생각을 갖지는 못하더라도 쓸 데 없이 지엽적인 것에 매달려 근간을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