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격동의 현장인 운현궁. 고종의 부친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온갖 풍파를 겪었던 그의 사가(私家)다. 서울시가 운현궁에 대한 4년간의 보수공사를 끝내고 지난달부터 일반에게 공개해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몰리고 있다.
대원군이 집권할 때는 여러차례 증축을 거듭해 한때는 규모가 2만여 평에 달했다. 하지만 일제시대와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지금은 대지가 2천1백48평 정도로 줄었다. 그러나 대원군의 사랑채였던 노안당(老安堂)과 민비가 왕후수업을 받았던 노락당(老樂堂), 안채인 이로당(二老堂) 등에는 관련 유품이 전시돼 당시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서울시는 이번에 운현궁을 중수하면서 상량문(上樑文)을 한글 2.1로 만들어 상량문의 컴퓨터시대를 열었다. 그동안 상량을 축복하는 글은 모두 붓으로 썼던 것이 관행이었다. 운현궁 상량문도 예외가 아니어서 원래는 붉은 비단에 금가루 한자로 썼다. 글을 짓고 쓴 사람은 좌의정 조두순(趙斗淳)이었다고 한다.
상량문과 함께 2백짜리 순은(純銀) 눌림쇠도 발견됐다. 눌림쇠는 자손들의 번영을 빌고 중수 때 이를 팔아 보태쓰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서울시는 운현궁을 중수하면서 상량문을 예전처럼 한자로 쓰는 방안과 컴퓨터 디스켓으로 만들어 넣는 방안, 그리고 원래 상량문 모조품과 함께 별도로 한글 2.1서체를 사용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 마지막 방안을 채택했다. 화학처리된 종이는 1백년이 지나면 썩기 때문에 경남 의령의 한지마을에서 만든 전통 한지에다 한글2.1 서체로 상량문을 인쇄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는 많은 문화재를 중수했지만 상량문을 한글 컴퓨터 글자로 만든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급속한 기술발전 추세로 한글2.1도 이제는 최신 제품 대열에서 벗어나 있지만 이번 한글 2.1 상량문 제작이 한글소프트웨어 사용확대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