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생각] 멀티미디어문화의 정착

그간 몇번 멀티미디어 문화의 활성화와 정착을 위해 현재 이 분야에 종사하거나 관계한 사람들의 심성과 태도, 그리고 활동의 주안점이 어디에 맞춰져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첫째는 온라인 멀티미디어의 도래를 예견하면서 현재 우리가 유일하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분야의 멀티미디어 자료 및 내용을 만들기 위해 의지 있는 사람들간의 교류와 결합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이 분야가 기존의 전통적인 컴퓨터 소프트웨어 분야와는 달리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문화적 소양과 전반적 교양, 그리고 세계적 유산에 대한 지적이고도 감성적인 인식의 기반 위에서 기획돼야 함을 강조했다. 이 점은 아직도 다분히 맹목적인 기술 지향적 풍토, 어쩌면 개발도상국의 철천지 한과도 같은 콤플렉스의 시작과 끝을 정확히 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문화를 심각히 왜곡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법적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일체의 편향과 행태에 대한 비판의 말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악조건 외에도 CD롬의 미래 그 자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 한다. 언제쯤 인터넷을 비롯한 온라인으로 대체될지, 또 디지털 비디오 디스크의 출현과 보급은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하지만 이런 말들은 구름 잡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직 인터넷이든 ISDN이든, DVD든 간에 어떤 것도 멀티미디어의 앞날을 안정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우리 앞에 놓인 산은 저 멀리에 있는 것들이 아니다. 몇몇 대형 업체들을 제외한다면 수많은 소규모 개발사들이 3년 후가 아닌 내년의 사업 계획을 놓고 고민하고 있고 그 고민은 존폐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

그간 유통과 개발을 결합시키고 양쪽의 상황을 면밀히 보면서 느낀 점은 대부분의 책임이 개발 분야에 있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우리 나라의 상황에서 유통이든 개발이든 모두 영세성을 면치 못하기 때문에 그 영세성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어느 일방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영세성의 고리를 누가 풀 것인지는 개발 분야의 몫이라는 게 잠정적 결론이다. 한마디로 아직도 우리 나라에선 그 제품의 질 덕분에 많이 팔아본 경험이 별로 없다. 나날이 시장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전적으로 제품의 만족도가 향상되지 않고 있은 돈이 되지 않는 분야이기 때문에 양질의 인력, 개발 과정의 안정성, 핵심 기술에 대한 투자 등이 모두 궁핍하다는 점을 모두 인정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전혀 없는가. 아니다. 그 답을 소비자의 요구에서 찾자. 우리의 눈을 소비자의 눈 높이에 맞추고 세계적인 상품과 우리의 차이를 정확히 직시하자. 외국 제품을 무조건 원용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술력과 개발력, 투자 여건 등을 면밀히 고려하고 시장의 성격에 맞는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우리 스스로를 단련해야 한다. 이런 단련 과정을 통해 내수 시장에서의 안정적 기반을 구축한 후 세계 시장을, 미래의 멀티미디어 시장을 준비해야 한다. 이 과제는 개발, 유통, 소비자, 교육 담당자 등의 다각적이고 전면적인 대화에 의해서만 그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이건범 아리수미디어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