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로 프린트되지 않고 사람의 손으로 그려진 포스터.
얼핏보면 각종 그래픽 프로그램과 첨단 장비들이 쏟아지는 요즘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제품이다.
하지만 서울 용산 등 전자상가에 가면 이 손으로 제작된 글씨와 그림들이 다른 어떤 포스터들보다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자극적이지도 않으면서 소비자에게 전달코자 하는 내용은 모두 전달시키는 한마디로 효과만점 제품이라는 평가다.
용산전자상가 애드선(대표 김상선)에 근무하는 전영선씨(26)는 상가 상점들을 대상으로 이같은 손포스터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해주는 사람이다.
전자랜드 전역에 부착된 각종 안내문이나 제품가격표들 대부분이 전영선씨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 때문에 전자상가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알 정도로 전씨는 유명하다.
전씨의 연장은 붓과 물감,그리고 아이디어다.
흰 도화지에 붓과 물감으로 글씨만을 쓰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파스텔로 색칠을 하기도 하고 색지를 오려붙이기도 한다.지난 95년에는 가을분위기를 물씬 풍기기 위해 갈대꽃을 따다 붙이기도 했다.
전씨의 손포스터 제작경력은 5년.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간헐적으로 손포스터를 제작하던 중 2년 전 손포스터 제작자를 찾던 애드선 김사장과 알게 돼 전문 직업인으로 나서게 됐다.
당시 김사장의 취지는 손포스터 제작자의 손길을 통해 전자랜드의 분위기를 깨끗하고 산뜻하게 변화시키는 것.
김사장의 당초 목적대로 전영선씨의 손길을 거친 전자랜드는 깔끔하게 단장됐고 대상지역도 전자월드와 터미널상가까지 확대됐다.
전영선씨가 가장 분주한 때는 전자상가 세일시점.밤샘작업을 통해 하루 4백장의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하는 등 이 때는 거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글씨만 쓰면 포스터 한 장에 1천원씩 계산되고 재료비가 비싸지면 단가가 올라간다.
전영선씨와 달리 김정은(26)씨는 프리랜서로 손포스터를 제작한다.
김정은씨의 대학때 전공은 목공예.하지만 지난 9월 우연히 모업체의 포스터를 그렸던 것이 인연이 돼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김정은씨는 붓과 물감외에 실크스크린도 연장으로 활용한다.작업량이 많을 때 글씨의 품질이 떨어지는 점을 우려해 생각해 낸 것이다.
실크스크린으로 글씨를 인쇄한 후 크레파스와 붓으로 잠자리도 그려넣고 제품 사진을 오려 붙이기도 하고 여러번의 손작업 끝에 포스터를 완성한다.
얼핏 눈으로 봐서는 실크스크린을 통했는지 손으로 썼는지 식별이 안될 정도로 포스터에는 수작업 냄새가 물씬 풍긴다.
포스터 한 장당 단가는 3천원.
지난 달에는 용산에 제품을 공급하는 모업체의 포스터 6백장을 손수 제작했다.소요된 시간은 1주일.
전영선씨나 김정은씨처럼 손포스터 제작자가 되기 위해 별도로 마련된 교육과정은 없다.
아이디어와 재능만 있다면 몇 달 정도의 연습 후 누구나 해 볼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김윤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