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가는 사람들이 있다. 새 길을 개척하기에 이들은 무척 힘이 든다. 그렇지만 이들이 지나간 길은 뒤좇는 사람들로 곧 뒤덮인다. 사람들은 이들을 리더라고 부른다.
가전업계에도 리더가 있다. 독자적인 아성을 구축하면서 특정 가전분야를 선도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가전업계의 리더를 찾아 그들의 진취적인 모습을 시리즈로 매주 월요일에 게재한다.
〈편집자〉
삼성전자 DVD개발센터 사람들은 남다른 긍지를 갖고 있다.
국내 가전산업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업체와 동시에 선진 가전제품을 상품화했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자부심도 있다. 디지털과 멀티미디어 세계의 한 복판에 삼성전자가 있고 그 한가운데에 DVD개발센터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자칫 외부인이 보기에는 자만으로 비칠 수도 있는 자부심을 이들이 갖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DVD개발센터는 고작 한 살바기 신생사업부에 지나지 않지만 그동안 다른 어느 사업부나 연구소도 하기 힘든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DVD 상용화의 물꼬를 튼 DVD통합규격이 나온지 두달 뒤인 지난해 11월 1일 삼성전자는 DVD관련 연구조직과 사업조직을 한데 모아 DVD개발센터를 신설했다.
삼성종합기술원 연구원 70여명이 주축이 된 이 센터는 삼성전자 수원공장 연구소를 둥지삼아 DVD 개발에 착수했다.
이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상품화에 매달렸다. 선진업체와 동시에 상품화한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도 단순히 DVD플레이어만이 아니라 DVD롬드라이브와 DVD TV 등 DVD와 관련된 거의 모든 제품의 상품화에 나섰다.
이곳 사람들은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자주 출장갔는데 업무 때문에 제때에 연락하지 못해 아내에게 오해(?)를 산적이 있는 연구원이 한두명이 아니라고 이 센터의 신동호 박사는 전했다. 또 어떤 연구원은 작업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했던 지난 9월에 결혼하기로 하고 예식장까지 잡아놓았다가 상품화가 늦어져 결혼식을 12월로 연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열의 속에 국내업체로는 처음으로 DVD상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박사급을 포함해 1백50명이 넘는 고급인력과 전사적인 지원이 있는데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말한다.
이에 대해 안태호 DVD개발센터장(이사)은 『좋은 인력과 투자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라고 잘라말한다. 그는 『1백92건에 이르는 DVD 특허마다 개발센터 사람들의 땀이 배어 있다』면서 이는 공짜로 얻어진 게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만큼 의욕이 대단했다는 게 안이사의 설명이다.
삼성전자 DVD개발센터는 현재 DVD플레이어, DVD롬드라이브, DVD/LDP복합제품 등 제품별로 팀을 갖추고 있다. 재생뿐만 아니라 기록도 할 수 있어 차세대 DVD로 불리는 DVD램 연구팀도 포함돼 있다.
각 팀은 연구원과 상품기획, 생산제조 담당자로 뒤섞여 있다. 사업체인만큼 현실과 접목되는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연구소와 생산현장, 마케팅이 동떨어져 있는 다른 회사의 사업조직과 비교할 때 강점임에 틀림없다. 팀원마다 상당한 노하우를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팀원들의 활발한 의사소통과 신뢰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DVD개발센터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워크숍을 갖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회의를 수시로 열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DVD개발센터는 지난 93년 종합기술원시절에 독자규격의 DVD램 기술을 국내 처음으로 개발한 것이나 이번에 재생용 DVD플레이어를 상용화하고 환형 차폐방식 광픽업을 개발하는 등 지금까지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는 일류일지 몰라도 외국 선진업체에 비하면 아직 모자라는 점이 많다는 판단 때문이다.
DVD개발센터 사람들은 그 부족한 점을 메우려고 전력투구하고 있는데 DVD플레이어를 상용화하자마자 DVD램 개발체제로 전환한 것에는 이같은 의지가 물씬 배어나오고 있다.
〈신화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