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영상기기인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 시장 경쟁이 점화됐다.
도시바와 마쓰시타 등은 이달부터 DVD플레이어를 본격 판매하기 시작했다. 도시바는 「SD300」이라는 이름의 7만7천엔짜리 DVD플레이어를 내놓았고 마쓰시타는 「DVDA300」(9만8천엔)과 「DVDA100」(7만9천8백엔) 등 두 종을 한꺼번에 출시했다.
마쓰시타는 또 이달말까지 DVD플레이어를 내장한 TV를 출시할 예정이고 파이오니아도 DVD플레이어를 비롯한 각종 DVD제품을 시판할 예정이다.
산요와 제니스, 톰슨, 히타치 등도 각각 도시바, 마쓰시타, 파이오니아 등으로부터 주문자부착상표생산(OEM)방식으로 공급받아 올해안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소니와 필립스 등도 내년 봄에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며 샤프, 켄우드 등 기타업체들도 DVD플레이어 시장에 뛰어들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이달 중순부터 시판에 나서는 삼성전자를 필두로 국내 가전업체들도 최근 DVD플레이어의 상품화를 서두르고 있다.
가전산업의 혁명이라는 DVD세계의 가장자리에 사람들은 이미 들어선 것이다.
DVD는 주사선이 5백개인 고화질 영상은 물론 입체음향시스템에서 나오는 박진감 있는 음향을 제공한다.
또 음성으로는 최대 8개국어까지, 자막으로는 30개 국어까지 담을 수 있는 등 기존의 영상기기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기능이 대거 채용돼 있다.
마쓰시타가 판매중인 제품의 경우 멀티앵글기능이 있어 시청자가 취향대로 화면을 보는 각도까지 조절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런데 DVD의 가치를 이같이 혁신적인 기능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DVD의 가치는 다른 곳에서 더욱 빛난다. 바로 디지털이다.
디지털 기술의 총아인 DVD는 세계 가전업계를 휩쓸고 있는 멀티미디어 바람을 더욱 거세게 만드는 제품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차세대 멀티미디어 시대의 기록매체로 DVD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저장용량이 기존 CD매체보다 훨씬 뛰어나며 특히 동영상을 처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또 디지털 신호로 구성돼 어떤 디지털기기와도 호환할 수 있다. 멀티미디어 시대를 더욱 앞당기는 매체가 바로 DVD인 것이다.
특히 기록 재생이 가능한 차세대 DVD가 본격 상용화할 2000년 이후에는 DVD가 모든 영상 매체의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하는 데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DVD에 대한 세계 가전업체들의 관심은 당장 이달부터 시판되기 시작한 DVD플레이어가 어느 정도 시장을 형성해나갈 것이냐에 쏠려 있다. 그 여부에 따라서 전체 DVD시장과 가전시장 전체에 대한 조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단 DVD플레이어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적어도 레이저디스크플레이어(LDP)와 비디오CDP와 같은 전철을 DVD플레이어가 밟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인 것이다.
LDP와 비디오CDP는 영상기기제조업체와 영상소프트웨어업체간의 이해가 서로 어긋나면서 일부 제조업체만이 참여하고 소프트웨어의 제 때 공급이 이뤄지지 않아 실패한 상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비해 DVD플레이어는 사실상 규격 통합을 주도할 정도로 영상소프트웨어업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 제조업체들도 기존 제품으로는 한계 상황에 이른 가전산업의 새로운 돌파구로 DVD플레이어를 한껏 활용하겠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DVD는 종전 제품보다 혁신적인 기능을 갖고 있어 그 자체로도 상품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분석을 바탕으로 DVD플레이어 시장은 1∼2년 정도의 도입기를 거친 후 오는 98년께를 고비로 초고속 성장을 거듭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업체들은 DVD플레이어를 비롯한 DVD시스템이 오는 2000년에 3조엔 정도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같은 장밋빛 전망에 대해 제동을 거는 목소리가 전혀 없지는 않다.
영상소프트웨어업체들이 현재 DVD에 대해 높은 관심을 내비치고 있지만 어느 정도 DVD플레이어가 보급돼야 소프트웨어를 내놓으려 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 곧 대용량에 기록 가능한 제품이 나올텐데 굳이 재생전용의 DVD플레이어를 살 사람이 있겠느냐는 반문도 있다.
할리우드영화사 등이 DVD타이틀의 제작에 나섰다는 말이 없고 도시바EMI를 비롯한 제조업체의 계열사조차 DVD타이틀의 발매를 늦추고 있다는 최근 소식은 이같은 전망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일부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DVD플레이어시장이 장기적으로 거대한 시장을 창출하면서 침체에 빠진 세계 가전산업을 회생시킬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론을 달지 않고 있다.
DVD플레이어시장은 앞으로 도시바, 마쓰시타, 소니 등 선발 주자들인 일본업체들이 독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업체들은 대량의 기술특허에다 다양한 제품 개발력과 아울러 브랜드지명도라는 프리미엄까지 갖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유럽과 미국의 전자업체들이 도전하고 있지만 필립스와 톰슨 등 일부 업체만이 겨우 체면을 유지할 수 있을 수준이다.
오히려 우리나라 업체들이 일본업체들에 맞설 유일한 상대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우리 업체들은 현재 DVD플레이어를 일본업체와 거의 동시에 상품화하고 독자적인 특허도 일부 보유할 정도로 상당한 기술경쟁력을 갖춰놓고 있다.
다만 일본업체보다 가격을 낮추기 어려운 점과 낮은 브랜드지명도 때문에 초기 시장 공략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가전3사를 비롯해 우리 업체들은 초기부터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 수출을 강화하고 브랜드지명도를 높이는 등의 적극적인 시장 공세를 펼쳐나갈 계획이다.
DVD플레이어시장을 놓고 한국과 일본업체들이 벌일 전쟁이 이미 시작됐다.
<신화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