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컴퓨터 파노라마 (41);정착기 (5)

2.18개각과 국가기간전산망사업 추진

5공화국시절인 85년 2월18일에 있었던 개각은 22개 부처 가운데 12개 부처 장관이 경질된 전면 개각이었다. 진의종 총리가 물러가고 노신영 안기부장이 새로운 총리에 기용된 이 개각구도를 놓고 언론들은 대체적으로 「5공화국의 체제 강화」라는 정치적 해석에 거의 이의가 없었다. 전면 개각을 단행한 이유, 이를테면 특정 장관의 스캔들이나 경제정책의 실패에 따라 경제팀이 물갈이된 상황도 아니었다. 경제팀의 경우 경제기획원, 재무부, 농수산수, 상공부, 동자부, 건설부, 체신부, 교통부, 과기처 등 9개 부처 가운데 경질된 각료는 과기처, 체신부, 농수산부 장관 뿐이었다.

그러나 개각 자체가 워낙 정치성이 짙어 미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컴퓨터를 포함해서 정보산업 분야에 국한해 본다면 이 개각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과기처, 상공부, 체신부, 총무처 등 당시 우리나라 정보산업 정책경쟁을 벌이던 4개 부처 가운데 3개 부처의 장관이 새로 기용됐기 때문이었다.

이들 4명의 정보팀 장관 가운데 금진호 상공부 장관만 유임됐다. 신임 과기처 장관에는 육사11기 출신의 김성진 체신부 장관, 체신부 장관에는 이자헌 민정당 의원, 총무처 장관에는 박세직 안기부 차장이 각각 기용됐다. 얼핏보면 매우 평범한 모양새였으나 정보팀 장관 개개인을 살펴보면 나름대로 정치적 배경과 실력을 갖고 있었다. 장관들의 이같은 면모는 아직 독자산업이 되지 못하고 있던 정보산업 주도권을 놓고 4개 부처가 벌여온 정책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설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었다.

2.18개각 당시는 때마침 대통령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기간전산산망조정위원회에 의해 5대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추진 계획이 범부처적으로 수립되는 단계였다. 5대 국가기간전산망에 대한 규모나 의미는 구체적인 계획이 짜여지지 않았더라도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능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작게는 정보산업에 대한 비전이, 크게는 정보화사회와 국가경쟁력의 관건이 이 사업에 달려 있었다. 84년 12월 행정망 계획이 마련된 이후 중간계획이 작성될 때마다 수시로 핫라인을 통해 청와대에 보고됐고 이 때문에 과기처와 체신부 등 관계부처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국가기간전산망사업의 추진주체에 따라 부처의 존망이 판가름날 지경이었다. 체신부 통신정책국에서 재직했던 서기관 Y씨는 2.18개각 때 정보팀 장관들에 대한 관련부처의 분위기를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4명의 장관 모두 재직시 강력한 정치적 소신을 보여줬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체신부에서 과기처로 자리를 옮긴 김성진 장관은 예외적으로 정통 테크노크라트 계열로 분류됐죠. 예비역 육군 준장이었지만 이학박사와 공학박사로서 국방과학연구소장을 역임하기도 했었으니까요. 물론 금진호 장관의 경우는 정치적 파워와 업무추진력이 함께 뛰어나 상공부 직원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았던 것으로 들었습니다만 이자헌 장관이나 박세직 장관은 추진력과는 별개로 실무분야에서는 해당부처에서 이견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실제 체신부의 경우 83년경부터 주된 정책방향이 전기통신과 정보산업의 접목으로 모아지고 있었던 터라 장관 역시 실무에 밝은 테크노크라트였으면 하는 바램이 직원들의 정서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체신부 차관은 오명 전 건설교통부 장관이었는데 그가 워낙 통신분야에 밝아 김성진 장관(현 한국전산원 비상근이사장)을 대신 과기처로 보냈다는 설이 회자되고 있기도 했다.

총무처 역시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가 마련한 「행정전산망사업 추진계획」이 대통령에 보고돼 이 계획에 대한 보완과 기초조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장관이 바뀌었다. 총무처는 이를테면 국가기간전산망 추진을 위한 전자정보통신팀의 주관부처로서의 새로운 역할이 기다리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에 반해 그때까지 사실상 정보산업 영역을 양분해 오던 과기처와 상공부는 비교적 느긋한 입장이었다. 과기처의 경우 전임 이정오 장관(현 한국과학기술원 석좌교수) 역시 실무정책에 밝은 군출신 테크노크라트였으나 추진력에서는 신임 김장관이 앞설 것이라는 기대가 우세했다. 상공부에서도 상공부 기획관리실장, 국보위 상공분과위원장, 5공화국 출범 상공부 차관 경력을 가진 금진호 장관의 유임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였다.

2.18개각에 대에 대한 의미는 개각 직후부터 시작된 부처별 새해 업무보고 등을 통해 드러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각 부처들은 2∼3년내에 본격 추진될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의 이니셔티브를 의식, 요란한 정보산업 육성계획들을 쏟아 내놨다.

개각 후 하루가 지난 2월19일 상공부가 먼저 「85년도 컴퓨터산업 육성계획」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주요 기기 및 부품의 국산화, 국산 컴퓨터 개발 여건조성, 컴퓨터산업의 수출산업화, 컴퓨터 이용기술의 확대, 전문인력 양성 등 5대 시책이 골자였다.

이에 앞서 84년 상공부는 전자산업부문 생산규모를 전년도의 2.5배인 75억 달러로 신장시켰고 26억 달러이던 수출액도 45억 달러로 늘려 놓았다. 당시 대통령의 관심은 온통 전자산업의 확대발전이었는데 금진호 장관이 유임된 것도 바로 이같은 성과 때문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이 여세를 몰아 상공부는 5대 시책을 통해 설비투자를 확대하고 국산화 여건와 국제경쟁력을 성숙시켜 컴퓨터부문의 독자산업화를 시도하고 나선 것이었다. 이 계획 작업에 참여했던 전자전기공업국 소속 과장이었던 L씨의 회고.

『국가기간전산망사업은 물론 86아시안 게임 및 88올림픽 특수를 앞두고 있었던 상황에서 상공부의 컴퓨터산업 육성계획 수립 방침은 매우 의욕적이었습니다. 우선 국산화 작업을 통해 주요 사업의 이니셔티브를 쥘 요량이었습니다. 84년이 기반 구축의 해였다면 85년은 내실을 기하는 해로 정했지요. 우선 컴퓨터 국산화와 수출을 촉진시키겠다는 방침 아래 이미 전자 부문에서 풍부한 민관 매개역할 경험을 갖고 있는 한국전자공업진흥회를 전면에 내세우기 했습니다. 실제 기업들에 대한 관세 감면, 전자공업진흥기금 지원, 인력양성 등의 업무가 한국전자공업진흥회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상공부가 컴퓨터 육성계획을 발표하자 그로부터 1주일 뒤 이번에는 장관이 바뀐 과기처가 「정보산업 집중육성 10개년 계획」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물론 이 계획은 과기처가 84년부터 준비해 오던 정보산업에 대한 중장기 마스터플랜이긴 했으나 『기술 주도의 경제사회 발전을 계획을 적극 펼쳐 나가겠다』고 취임식에서 밝힌 김성진 장관의 의지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기도 해서 더욱 주목을 끌었다.

10개년 계획은 85년부 94년까지 10년동안 우리나라 정보산업 생산규모를 각각 국민총생산의 25%, 수출액의 20%까지 끌어 올리며 전국 규모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전제로 전국민의 30% 이상이 가정용 컴퓨터 단말기(홈터미널)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여기에는 또 매년 4백명의 박사와 2천명의 석사를 배출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과기처 정보산업기술국 소속 사무관으로서 「정보산업 집중육성 10개년 계획」에 참여했던 L씨의 회고.

『사실 과기처는 처음부터, 그러니까 컴퓨터가 처음 도입되던 60년대 말부터 정보산업 정책 전담부처로서 위치와 자존심을 지키려 고심했습니다. 사실 과기처가 상공부나 체신부의 견제에 대해 그렇게 크게 신경쓴 것 같지는 않았는데 언론이나 업계가 앞서 대립적 상황으로 몰고가곤 했죠. 10개년 계획도 그런 차원에서 마련됐습니다. 상공부 등이 미미컴퓨터니, 프린터니 하는 구체적 품목들의 국산화를 실현하겠다는 식의 육성계획을 내놓았다면 과기처는 더욱 포괄적이고 지표적인 육성계획을 내놓아야 된다는 것이 기본 방침워었죠. 이런 관점에서 산업표준 제정이나 저작보호에서부터 음성인식이나 한글처리인터페이스등 기반기술에 이르기까지 산업 파급효과와 연관효과가 높은 분야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정리한 것이 바로 「정보산업 집중육성 10개년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상공부의 컴퓨터산업육성계획이나 과기처의 정보산업 집중육성계획은 그 내용의 표현방식이나 각론 등에서만 차이가 있었을 뿐 각 정책이 지향하는 바나 목적은 대동소이한 것이었다. 에컨대 상공부가 민간기업과 공동으로 32비트 유닉스컴퓨터를 단계적으로 개발하겠다는 것이나 과기처가 90년도까지 32비트 마이크로컴퓨터시스템의 개발을 완료하겠다는 식의 계획은 내용적으로도 유사할 뿐 아니라 정부 예산 집행 측면에서도 이중 투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런점에서 본다면 장관이 바뀐 체신부가 업무보고에서 내놓은 의욕적인 육성계획 역시 두 부처의 그것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체신부는 85년 업무보고에서 국가기간전산망의 구성추진을 비롯 초고집적반도체(VLSI)와 32비트 컴퓨터의 개발과 전문 기술인력양성 등 다양한 분야의 정보산업육성 계획을 내놨다. 체신부는 이같은 계획들을 85년 3월에 출범한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를 통해 추진함으로써 국가기간전산망 사업 추진 주체로서 가장 유리한 입장에 선다는 방침이었다.

아뭏튼 상공부, 과기처, 체신부 등이 2.18개각을 계기로 쏟아 놓은 산업육성정책들은 국가기간전산망 사업 추진을 계기로 확대발전의 길을 걷기 시작한 컴퓨터 산업 분야가 다양한 실험과정을 걷게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서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