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된 상가가 없다 --
『가전제품을 살려면 어딜가야 합니까』. 『컴퓨터 구입은 어느 상가를 가야 적당합니까』
소비자들이 심심찮게 물어오는 질문이다. 그러나 어디가 적당한가를 알려주기란 그리 쉽지 않다. 가격의 차이가 별로 없고 품질 또한 비슷하다. 개미군단 업체들이 모여 있는 상가인 만큼 조립 PC의 가격차는 별로 없다. 똑같은 부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품질도 거의 비슷하다. 가전제품도 이와 별로 다를 바 없다. 부품 역시 비슷한 가격으로 어느 점포를 가더라도 큰 특징은 없다.
따라서 용산전자상가를 찾은 고객들은 사고자 하는 품목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일원화된 원스톱쇼핑체제를 갖춘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전자랜드가 그나마 종합적인 면모를 갖췄으나 조립PC부문이 없기 때문에 이빨빠진 형상이다. 특화된 상가가 없다는 것은 동양 최대를 자랑하는 전자시장 용산상가의 취약점일 수 있다. 특히 외국 관광객이 찾아온다면 어디가 어딘지 사지분간 못하는 현실도 여기에서부터 비롯된다.
제품별 특화도 특화려니와 가격대의 차별화도 아쉬운 점의 하나이다. 최근 유통변화는 가격대의 차별화로 나타난다. 백화점이 있고 양판점이 있고 가격파괴점인 할인점이 있다. 고급 수요자를 노린 백화점의 경우 높은 가격에 최고의 품질, 서비스로 승부한다. 양판점은 다양한 메이커의 상품을 적당한 가격에서 비교구매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할인점은 메이커와 직매입을 통한 유통의 군살을 제거해 최하의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어필하고 있다.
그러나 용산전자상가는 획일화된 재래시장의 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급매장이 존재하는가 하면 할인점 형태의 대중적인 매장이 있어야 하고 전자랜드와 같은 양판점도 있어야 한다. 한번 입구를 들어서면 구매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쇼핑몰도 있어야 한다. 재래시장 형태의 상가도 있어야 한다. 혹자는 백화점식 매장을 규정지을때 에스컬레이터가 있느냐 없느냐로 정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이도 있다. 종합해 보면 용산전자상가 6개 상가중 특색있는 상가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상가가 조립PC를 하고 가전, 부품 도소매를 한다.
이런 와중에 「사이버마켓」을 운운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얘기이다. 첨단 전자제품을 파는 전자상가가 첨단 전자유통에 가장 둔감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가장 먼저 발벗고 나서야 할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강건너 불구경이었다. 반면 신흥전자상가의 도전은 거세다. 매장은 말 그대로 쇼핑공간에 불과하다. 모든 상품구매, 결재, 배달시스템이 최첨단 컴퓨터로 운영된다. 변변한 창고하나 없어 복도를 창고로 활용하는 용산전자상가의 현실로 볼때 분명 경쟁력에서 한수 꺾이고 들어가는 형국이다.
용산전자상가의 당면과제는 산적해 있다. 불황국면을 어떻게 탈출하느냐, 이후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는 신흥전자상가를 어떻게 견제하며 위용을 지속하느냐 등. 그렇다면 답은 어느정도 나와있는 셈이다. 최적의 쇼핑공간을 만들고 차별화된 상가를 통해 누구나 원하는 제품을 싸게 사는 일이다. 소비자 입맛에 맞는 제품을 가격대별로 정리해 놓는다면 손님은 있기 마련이다. 선인상가하면 부품, 컴퓨터, 전자랜드하면 가전 정도로만 인식되어 오던 용산전자상가를 제품별, 가격대별 최첨단화 매장으로 만드는 일이 세계화의 첫걸음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인터넷시대에 대비한 통신시장의 발판마련은 상가발전의 필수조건이 아닌가 싶다.
<이경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