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장벽을 높여 다른 업체의 추격을 원천봉쇄하는 것과 기술을 오픈해 진영을 넓히는 것, 어느 것이 장기적으로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인가.
갈수록 기술이나 상품의 라이프사이클이 짧아지고 기업의 활동범주가 국제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문제는 한 분야의 선두를 달리는 기업들이 안고 있는 딜레마이다.
전자의 경우는 독보적인 기술력은 유지할 수 있겠지만 자칫하면 기술적인 우위에도 불구하고 저변확산에 실패해 기술적인 그레이드는 떨어지지만 많은 지지세력을 확보한 경쟁업체에게 주도권을 빼앗길 위험소지가 있고, 후자의 경우는 많은 업체들과 생산 및 보급을 공유함으로써 제품의 조기확산에는 유리하지만 끊임없이 경쟁에 시달려야 하는 문제가 있다.
과거 소니와 NEC간에 벌어졌던 베타 방식과 VHS 방식의 대결에서 소니가 VHS진영에 시장주도권을 빼앗긴 것은 전자의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최근들어 네트워크컴퓨터, 컴퓨터용 통합보드 등 신기술 제품의 상당수가 대부분 특정기업이 단독으로 개발 및 보급을 추진하기보다는 기술개발에서부터 시장개척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 힘있는 업체들과 협조해 이끌어 가려 하는 점은 후자의 방법이 낫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인텔이 「386」 「486」 등 전통적인 CPU 이름체계를 버리고 486 다음 세대 제품을 「펜티엄」이란 독특한 이름으로 바꾼 것은 후발 추격업체들이 비슷한 상품명을 사용해 자사의 후광(?)을 입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가 적지 않았다. 전자의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인텔의 이같은 전략은 대체로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펜티엄부터는 사용자들에게 과거 386에서 486으로 넘어가는 것과 같은 명확한 세대교체의 이미지를 심어주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실제로 상당수의 사람들이 성능구분을 위해 586.686이란 가공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관념적 습관의 무서움을 느끼게 하는 사례로 향후 PC의 세대교체 속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