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율리시즈의 시선」은 시간과 공간에 관한 영화이며, 고향에 관한 영화이며, 내면의 여행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또한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와 관련있는 영화이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관계있는 영화이며, 살륙의 현장인 발칸반도와 관련있는 영화이며, 이데올로기의 종언과도 관계 있는 영화이다.
따라서 「율리시즈의 시선」은 당연히 난해하다. 이 영화는 오늘날 가장독창적인 영화감독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테오 앙겔로풀로스가 자신의 조국인 그리스를 통해 「20세기에 대한 문명사적 성찰」을 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에 대한 혹은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발칸반도 분쟁에 대한 유난한 지식이 없이는 이렇다 할 줄거리가 없는 이 영화가 잘 이해될 수는 결코 없는 것이다.
그 난해함은, 「오딧세이」와 「율리시즈」라는 이름이 서구문명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관객이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도 온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율리시즈는 오딧세이의 라틴어명임)가 세계명작 중에서도 그 작품명이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난해함 때문에 독자로서는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율리시즈란 의식의 흐름을 통해 시공간을 여행하는 내면세계의 여행자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러나 「율리시즈의 시선」에서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것은 「율리시즈」가 아니라 「시선(gaze)」이다. 그럴 때 이 영화는 공간 이동을 통해 탐구되는 시간 혹은 역사에 관한 성찰이 된다. 다시 말해서 20세기의 끝에서 20세기가 시작되던 최초의 지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 시도는 발칸반도 최초의 감독인 마나키아 형제가 찍었다고 전해지는 「3통의 필름」을 찾음으로써 성취된다.
그 3통의 필름을 앙켈로풀로스 감독은 「최초의 시선」 혹은 「순수의 시선」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잃어버린 그 3통의 최초의 시선 속에 피로 얼룩진 20세기와 발칸반도의 비극을 해결할 실마리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A(하비 키이텔 분)는 미국으로 망명한 그리스 출신의 영화감독이다. A는 35년 만에 그리스를 방문한다. 그것은 쉽게 그 소재지가 드러나지 않는 3통이 필름을 찾기 위해서이다. 그리하여 여행 혹은 길에 관한 명상은 시작된다. 그 길의 끝에서 A는 마침내 3통의 필름을 찾게 되지만, 관객 또한 A처럼 그 필름을 보게 되지만, 그리스에 대해 별 지식이 없는 우리에게 그것은 마치 풀리지 않는 암호처럼 보인다.
A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A가 무엇을 보았는지에 대해 이 영화는 아무런 정보도 주고 있지 않다. 그러나 A는 물론이고 감독인들 빛바랜 필름 속에서 핏빛 현실을 해결할 만한 무슨 답을 찾을 수 있었겠는가. 해답은 차라리 율리시즈의 여정 혹은 「시선」에서 찾아져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과연 해답이 있는가. 넉넉한 마음으로 이 영화가 제공하는 화면을 즐기는 것 외에 우리에게 다른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채명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