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붙박이 에어컨

베르사유궁의 안주인이었던 마리 앙투와네트는 침실 남쪽에 있는 정원을 선물받고 대단히 기뻐했다고 한다. 검소했던 루이 16세와는 달리 사치스러웠던 그녀는 침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정원 앞 가운데를 열대식물로 가득 채웠다. 우리의 기후와 별 다름 없어 겨울이면 추운 프랑스 파리의 겨울에도 마리 앙투와네트는 열대의 정원을 갖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녀는 열대식물이 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원 주위에 불을 때서 열대식물에 적합한 기온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것을 위해 엄청난 장작과 인력이 투입돼야 했음은 물론이다.

『인간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칼 막스는 갈파했지만 인간의 역사는 「자연과의 투쟁」의 역사임에 틀림없다. 고대부터 인류는 생존과 쾌적한 생활을 위해 추위, 더위, 홍수, 태풍 등과 맞서 싸워왔다. 그 가운데에서도 1902년에 미국 W.H. 캐리어가 개발한 에어컨은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대표적인 문명의 이기이다. 초창기 산업체에서 공기조화기로 주로 쓰이던 에어컨은 가정용으로 수요가 늘면서 가격도 낮아져 서민들의 집안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생활필수품이 됐다.

그렇지만 에어컨은 이사를 할 경우 골칫거리로 전락한다. 그것을 떼어내고 설치하는 데 전문가가 동원돼야 하기 때문이다. 또 그것을 새로 이사한 집에 가져가더라도 집이 작으면 필요 이상으로 냉방용량이 넘치는 것외에 사용하는 데 별문제가 없지만 집이 아주 크면 냉방능력이 부족해 에어컨을 한대 더 설치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그런지 에어컨을 구입할 때 무조건 용량이 큰 제품을 선호하는 경우가 잦다. 가정에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분리형(벽걸이)에어컨을 제쳐두고 용량이 큰 슬림형(패키지)에어컨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가전3사가 최근 다음달부터 에어컨 예약판매를 실시키로 했다고 발표, 에어컨 구매시기가 돌아왔다. 올해도 연례행사처럼 일어나는 소비자들의 「에어컨 구득난」이나 가전업체들이 제품을 팔지 못해 발생하는 「재고 몸살」을 겪게 될 것이다. 건축업자들이 아파트는 물론 단독주택을 지을 때 붙박이로 에어컨을 설치한다면 그러한 현상은 훨씬 완화될 것이다. 이제 우리도 「에어컨은 집에 부착돼 있는 부동산」쯤으로 생각하길 원한다면 아직 시기상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