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연중기획 SW산업을 살리자 (39)

이번 호에는 소프트웨어업계 전문가인 한글과컴퓨터 김택완 기획담당이사의 글을 싣는다. 최근 퇴조를 거듭하고 있는 국내 패키지 소프트웨어 산업 현황에 대해 정부 정책담당자가 아닌 기업관계자 시각에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소프트웨어산업 발전에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편집자>

<패키지 소프트웨어 산업 현황과 97년 전망>

한글과컴퓨터 이사 김택완

우리나라에서 패키지 소프트웨어 산업이 본격화된 것은 90년대에 들어와서라고 볼 수 있다. 그 계기는 지난 92년 정부의 대대적인 불법복제 단속을 계기로 소프트웨어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달라지면서 부터였다. 컴퓨터 마니아들이 삼삼오오로 모여있던 소프트웨어하우스들의 매출이 급신장하면서 기업으로서 틀을 갖추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글과컴퓨터나 한메소프트와 같은 마니아 집단들이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추면서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재출발하게 됐고 빌게이츠 신드롬 속에 많은 젊은이들이 이 분야로 뛰어 들었다. 이에따라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이 멀지않아 꽃필 것이라는 성급한 진단이 대세를 이뤘다. 그러나 이런 진단과 달리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은 기대만큼 발전을 이룩하지는 못했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소프트웨어산업 성장율은 31.7%였다. 93년의 62.6%, 94년의 58.6%에 비해 급속도로 하락하고 있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올해 성장률 역시 이같은 하락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같은 원인으로는 매년 그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는 소프트웨어 유통체계 붕괴와 불법복제를 들 수 있다.

유통체계의 붕괴는 소프트웨어산업 자체를 위태롭게 했다는 점에서 보다 심각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올해는 사실상 소프트웨어 유통업계를 대표하던 대형 유통사들이 도산하거나 대기업에 인수되자 남아 있던 유통사들은 위험부담이 적은 PC 하드웨어 판매위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공백을 다행히 세진컴퓨터랜드가 메꿔주는 듯 하더니 올 하반기부터는 소프트웨어 위탁판매제의 도입으로 그나마의 기대도 어렵게 되었다.

자체 판로를 가진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아무리 좋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도 판매할 채널이 없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올해 소프트웨어 시장은 급격하게 침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고 대신 PC번들이나 덤핑 등 편법적인 판매가 성행하였다.

불법복제 역시 92년 일제 단속이 시작된 이후 올해가 가장 기승을 부린 해였다. 올해의 불법복제는 특히 정품 소프트웨어 시장까지를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불과 1∼2년전 까지만 해도 5백만원을 호가하던 CD복제기(CD리코더)의 가격이 1백만원 이하로 크게 떨어진 것도 불법복제를 가속화시킨 한 요인이었다. 이같은 장비를 이용해서 「한글윈도95」, 「한글」 등 수십 종의 소프트웨어를 1장의 CD롬에 담은 불법 패키지들이 정품가격의 10% 미만인 2만원 대로 시장에 범람했다.

불법복제는 대기업 계열의 PC회사 대리점들에 의해서도 이뤄졌다. 지난 8월에는 삼성전자, 삼보컴퓨터, LG전자 등의 대리점들이 PC판매시 「윈도95」 등을 무단복제해서 끼워주다가 검찰의 단속에 걸려 그중 일부는 구속까지 되기도 하였다.

유통체계의 붕괴와 불법복제라는 두가지 악재로 올해 패키지 소프트웨어의 시장규모는 6백억∼7백억원에 그칠 전망이며 더욱이 국산소프트웨어의 매출은 그 절반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올해 시장에서 두각을 보인 국산 제품으로는 한글과컴퓨터의 「한글프로96」, 가산전자의 「캡션맥스」, 큰사람컴퓨터의 「이야기 7.3」, (주)언어공학연구소의 「트래니96」,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의 「백신III프로95」, LG소프트웨어의 「홈워드」 등이 꼽히고 있다. 이와함께 일부 그룹웨어 제품들이 여기에 가세했다.

과거에 비해 지명도가 높은 유명제품의 숫자가 줄어든 것은 패키지 업체들이 개발비 회수조차 어려운 시장 상황에서 대규모 선투자가 요구되는 마키팅비용 부담을 감수하려 하지 않은 결과이다. 유명제품은 마키팅전략으로 만들어지는 것인데 업체들이 여기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얘기다. 대신 업체들은 선투자가 필요없는 수주용역 사업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때 한메타자교사, 한메한글 포 윈도우 등으로 패키지소프트웨어업계를 대표했던 한메소프트 등이 소프트웨어 업체로서 독자 생존의 한계를 인식, 스스로 대기업 계열에 편입된 것은 올해 업계 사정을 단적으로 대변해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 기대를 모았던 콘텐트 분야에서는 양적으로 풍성한 수확을 거뒀으나 전문 유통업체 부족과 멀티미디어 소스의 부족, 과다한 개발비 부담 등 근본적인 한계에다 수요 창출에도 실패, 내실을 기하지 못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 매출액 면에서도 큰 신장세를 보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다행히 게임, 어학실습(영어회화), 유아교육, 취미(바둑) 등 일부 분야에서 타이틀 당 5천개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 제품들이 나와 업계의 체면을 유지해줬다. 올해 출시된 CD롬타이틀 콘텐츠는 모두 8백여 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대부분이 1천개 내외의 저조한 판매실적을 기록하고 말았다.

한편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었으나 나름대로 위치에서 우리나라 패키지 소프트웨어산업을 유지시켜왔던 PC하드웨어 번들경기도 올해는 질서자체가 혼탁해지면서 분명환 퇴조세를 보였다. 번들시장 경기의 하락은 PC 공급회사들에게도 불황을 가져왔다. PC 업체들의 올해 판매실적은 대부분 목표치를 훨씬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가장 타격을 받게되는 곳은 다름아닌 번들용 상품을 제공해온 패키지소프트웨어 및 CD롬타이틀 콘텐츠 개발사들이다. 워드프로세서 등도 초기사용자 시장선점을 위하여 번들공급을 시도하고 있지만 콘텐츠 분야는 전체 시장의 60∼70%가 PC공급사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CD롬타이틀 콘텐츠업체들의 PC공급회사 의존도가 높은 것은 일반 시장에 내 봐야 몇천개도 팔리지못할 것이 뻔한데다 자체적으로 상품화할 경우 막대한 마케팅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콘텐츠업계가 손쉬운 PC번들을 선호해온 것은 기본적으로 개발사들이 기업적 영세성을 탈피하지 못한 점과 함께 패키지소프트웨어에서 처럼 유통체계의 부재 또는 붕괴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올해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가장 희망적인 사건은 지난 3월 재경원과 정보통신부에서 추진한 97년도 정부 예산안에 하드웨어 구매비율의 10%를 소프트웨어 구매에 할애토록 한 결정이었다. 또 정보통신부 등 중앙부처에서 솔선수범하여 「V3+」 백신 등을 단체 구매한 것도 큰 보탬이 됐는데 이에따라 유관기관들의 정품 구매가 줄줄이 뒤를 잇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조만간 일반 민간 기업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여 내년도의 소프트웨어 산업 전망을 나름대로 밝게 해주고 있다. 올하반기 이후 터진 또다른 희소식은 지난 9월 소프트웨어 업계 최초로 한글과컴퓨터와 가산전자 등이 주식장외시장(코스닥)에 등록,주가가 급상승함으로써 많은 소프트웨어 업체들에게 투자의욕을 불어넣어 준 사건이다. 이에 자극받아 서울시스템과 휴먼컴퓨터 등 소프트웨어회사들의 장외 등록 행렬이 줄을 잇게 됐다.또 창업투자 회사들의 관심이 소프트웨어 기업들에 몰리는 고무적인 현상을 낳기도 하였다.

이런 희망적인 사건들은 유통체제의 붕괴나 불법복제의 만연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내년의 국내 소프트웨어산업 전망을 밝게해주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구체적으로 내년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을 전망을 밝게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요소들로는 크게 두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번째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97년 정부 예산안에 하드웨어 구매예산의 10%를 의무적으로 소프트웨어 구매예산으로 할애하게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정부의 소프트웨어 구매량이 올해보다 3배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므로 정부가 우리나라 최대의 소프트웨어 시장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특히 정부의 솔선 구매는 산하 정부투자기관들과 국영기업체, 금융기관으로 그 여파가 파급될 것이며 대다수 민간기업들도 뒤따르게 하는 선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 신규 시장 창출의 효과는 매우 크다 하겠다. 어떠한 산업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시장이다. 내수든 수출이든 시장이 있어 팔려야 그 산업이 발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에는 그 기반이 되는 내수시장의 확충이 바로 첫 번째 열쇠가 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두번째는 정보통신부가 소프트웨어 관련 산학연 전문가 70여명을 모아 준비해온 「소프트웨어산업 육성 종합계획」으로 이 계획에는 소프트웨어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키우고자 하는 강력한 정부의지가 담겨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요성에 뒤늦게나마 눈을 뜬 정부의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 의지가 담겨있는 이 안은 현재 초안이 나와 지난 10월 31일 공청회를 거친 상태이며, 안을 가다듬고 관련부처와의 협의를 거치는 정책입안 준비과정에 있는데 예정대로라면 오는 2001년 소프트웨어 산업 국내 총 생산 2백억달러, 수출 25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97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이 분야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보태질 전망이다. 암울했던 96년을 꿋꿋이 버텨온 우리 소프트웨어 업계에 정부의 이같은 조치들이 단비가 되어 97년에는 비로소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이 꽃을 피우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