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경] 러시아 양대 통신업체 합병 의미

러시아의 양대 전화서비스업체인 로스텔레컴과 스뱌진베스트가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 장거리전화시장의 95%를 점유하면서 자국 내 국제전화 수요의 85%를 수용하고 있는 업체와 러시아 84개 지역전화업체를 소유, 운용중인 이 지역 통신시장 양대 강자가 합쳐지는 것이다.

합병으로 탄생할 업체는 36억달러의 자산규모를 갖게 돼 러시아에서는 물론 광대한 국토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통신업체로 부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이같은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미국, 유럽 등 서구의 앞선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 이를 위해 양사간 합병이 시도되고 있고 또 합병의 주체인 러시아정부가 발벗고 나서고 있다.

스뱌진베스트는 지분 1백%를 러시아정부가 갖고 있는 국영기업체다. 또한 로스텔레컴도 정부지분은 38%밖에 되지 않지만 의결주의 절반 이상이 정부에 있는 사실상의 국가소유. 이런 러시아정부가 최근 로스텔레컴의 정부보유분을 스뱌진베스트로 양도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나아가 내년부터는 서구업체를 대상으로 합병업체의 주식매각에 본격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양사의 합병은 러시아 통신시장 개방의 전주곡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러시아정부는 지난 92년부터 자국 통신시장 개방을 위한 여러가지 노력을 계속해왔다. 가깝게는 지난해 12월 스뱌진베스트의 주식 25%를 이탈리아 국영통신업체인 스텟에 매각하려다 무산된 바 있다. 당시 스텟은 스뱌진베스트의 소유주체가 불분명하다며 이를 명확하게 해줄 것을 요구했다.

아직까지는 양사 합병 후 러시아정부가 합병업체에 전화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보호해줄지, 혹은 단순히 로스텔레컴의 정부보유 주식을 스뱌진베스트로 넘기고 이후 민영화 및 시장개방의 일정은 별도로 추진할지는 불분명하다. 또한 합병업체의 무게중심이 어느쪽으로 옮겨질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어떤 형식이 됐든 시장개방은 필연적이지만 다만 서구의 잠재 투자자들에게는 복잡한 소유구조를 갖는 지역전화업체의 지분을 소유한 투자업체보다는 현실적으로 이 지역에서 장거리전화서비스를 제공중인 업체라는 외형이 더 구미가 당기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번 계획에 따라 러시아정부는 합병업체의 지분가운데 약 25%인 10억∼20억달러를 일반에 매각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가운데 적잖은 분량이 서구업체에 매각될 예정이다. 러시아의 투자자로서는 합병업체의 지분이 서구업체에 많이 할당되는 것을 달가워 할 리 없지만 러시아정부에게 더 매력있는 대상은 외국업체인 것이다.

한편 합병 및 시장개방을 추진하는 러시아정부의 통신정책은 점차 세련되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러시아 통신시장의 성숙도를 반영한다. 점차 서구시장을 닮아가고 있다』고 서구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로 러시아 관계자들도 서구국가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밝힌다. 이제 더이상 규제로 인해 비난받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강조한다.

러시아에 투자경험이 있는 투자자들은 러시아시장이 더이상 규제에 막혀 정체해있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업체들은 새로운 환경에 신속하게 적응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현재 상황 정도로 러시아 통신시장의 불투명성이나 복잡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신시장에 불어닥친 뒤늦은 글라스노스트풍은 러시아 전역으로 불어가고 있다.

〈허의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