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소프트웨어 꿈나무

소프트웨어 분야만을 놓고 본다면 90년대 후반인 지금도 과거 40년 전과 마찬가지로 단 하나의 선진국과 절대다수의 후진국으로 양분되어 있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진국 대열에 낄 수 있는 나라도 독일과 프랑스 정도다.

이같은 현상은 수많은 경제선진국이 포진한 유럽의 경우 소프트웨어 원천기술 자체는 단 하나의 선진국인 미국에 비해 손색이 없지만 상품화 기술이나 전략 면에서는 경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하기 때문이다. 월드와이드웹(WWW)이 스위스연구소에서 창안됐지만 실제 이를 이용해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고 있는 곳은 바로 미국의 기업들이라는 것은 이같은 사실을 충분히 입증해 주는 좋은 사례이다.

소프트웨어 분야 전반적으로 모든 면에서 취약한 우리나라로서는 소프트웨어산업 육성을 위한 국가적인 투자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정부가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뒤늦은 일이지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까지 발표된 소프트웨어산업 육성계획은 패키지소프트웨어 분야와 시스템통합 분야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분야를 25년간 경험해 온 필자는 운용체계(OS)와 데이터베이스(DB), 소프트웨어 자동화도구 개발분야 등 기초분야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OS분야가 중요한 근거는 공학분야에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같은 기초학문이 그 존재기반을 공고히 하듯이 소프트웨어 전반을 지탱하는 주체가 바로 OS이기 때문이다. 국내에 물리학, 화학 위주의 기초과학연구소가 존재하듯이 소프트웨어산업 전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국립OS연구소는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DB분야를 위해서도 국립DB상품화 차원의 연구소가 설립돼야 한다. 이것도 OS와 마찬가지로 DB엔진을 자체 국산화해 오라클과 정면 승부해야 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DB분야는 선진국에서도 아직 취약한 DB보안 분야와 같이 다른 나라보다도 조금만 앞서서 시작하면 전세계를 무대로 조기 상품화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DB엔진 상호간 연동을 위한 상품개발도 시장성은 크다. 이는 미국이 아직 신경을 쓸 여력이 없는 부분으로 우리에게는 유리한 연구주제임에 틀림없다.

만약 OS나 DB엔진 같은 선진국 개발 패키지 소프트웨어 상품들을 단순 도입하는 SI산업에만 치중한다면 이는 국내 소프트웨어산업 육성계획이 아니라 정반대로 국내 소프트웨어시장의 완전개방 및 국내시장 조기잠식 요청안이 되고 만다. 이같은 산업은 소프트웨어「서비스」산업밖에 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소프트웨어 분야 인력의 조기 양성이다. 이에 대한 공감대는 이미 형성되어 있어 내년부터라도 곧바로 대학의 소프트웨어 관련학과의 정원을 서너배 정도가 아닌 30∼40배 수준으로 대폭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제 어느 한 분야가 잘되면 견제하고마는 이른바 「전통적 한국병」의 좁은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즉 여러가지를 다 잘하기보다는 어느 한 특정분야에서 만이라도 1등을 해야 한다는 선진적 정서가 이 땅에 빨리 정착돼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동기부여급 소프트웨어연구소를 아직 전혀 갖추지 못한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다른 분야에서는 궤변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대규모 장비없이 정신적으로 신이 나게 해주기만 하면 큰 예산들이지 않고 엄청난 파급효과를 일으키는 제품을 탄생시킬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소프트웨어 분야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중퇴한 빌 게이츠가 장비가 화려해서 MS-DOS를 탄생시켰던가. 웹브라우저 엔진인 내비게이터와 익스플로러 내부 알맹이를 차지하는 모자이크를 일리노이대 전산과 학생인 마크 앤드리센(현 넷스케이프 부사장, 24세)이 개발하지 않았던가. 소프트웨어는 젊은이들에게 맡겨야 한다. 소프트웨어 꿈나무들의 대량 육성이 정말 필요하다.

<文松天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