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경제협의체(APEC) 18개 회원국 정상들은 이번 제4차 필리핀 수비크 정상회의에서 통상체제에 대한 지원과 역내 경제, 기술협력 강화 필요성 등 6개항을 담은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고 25일 폐막됐다.
보다 미래 지향적인 아태지역 무역자유화를 다짐한 이번 정상회의는 특히 회원국들의 자발적인 시장개방 일정인 「마닐라 실행계획(MAPA)」과 정보기술제품에 대한 무관세화를 실현하는 「정보기술협정(ITA)」 추인에 합의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MAPA는 지난해 오사카 행동지침에 따라 각 회원국들이 2010년과 2020년 사이에 무역자유화를 달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작성, 제출키로 한 시장개방 프레임으로, 개별실행계획(IAP)과 공동실행계획(CAP), 경제기술협력(ECOTEC) 보고서 등 4개 구체 실천안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회원국의 합의도출 가능성 여부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또 ITA의 채택은 후발 개도국이 대부분인 APEC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추진됐다는 점에서 커다란 진통이 예상된 의제 가운데 하나였다.
결국 이들 민감한 핵심의제들은 관측대로 산고 끝에 정상들의 추인을 받는 형식을 취했으나 ITA에 대해서는 여전히 냉담한 태도를 감추지 않고 있어 일정대로의 추진이 가능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리 대표단도 APEC 참석에 앞서 ITA 문제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는 찬성하되 구체일정과 무관세화 품목에 대한 논의는 중국 등 회원국들과 협력, 지연시킨다는 이른바 「만만디」 전략을 수립하기도 했다. 이는 대외적인 명분은 획득하고 내실을 꾀하자는 우리측의 협상전략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이같은 방침은 그런대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같은 협상전략은 시간을 좀더 번 것 뿐 문제의 본질이 사라졌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관세철폐 일정이 이미 굳어져 있는 상태이고 유럽연합측이 미국측의 미온적인 협상태도를 강력하게 비난하는 등 ITA 조기 시행을 강한 톤으로 촉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다음달 싱가포르 WTO 각료회의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ITA 협정체결을 일궈낸다는 방침이어서 우리의 이행기간 연장품목과 무관세화 품목 등 협상카드 마련이 촉박해진 셈이 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최근 종전의 드래프트를 대폭 수정, 상당 품목을 무관세 품목으로 제시하는 대신 주요 핵심품목에 대해서는 이행기간의 연장을 보장받는다는 쪽으로 협상을 이끈다는 복안을 세워놓고 있으나 이의 관철여부는 불투명하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이밖에 APEC의 정치적 합의를 통해 WTO 비회원국인 중국과 대만의 가입을 유도했고 아세안시장을 개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점은 높게 평가할 만한 것으로 꼽히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민간기업의 참여폭 확대와 개방적 지역주의를 주창함으로써 우리의 외교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모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