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망, 금융망, 교육연구망, 국방망, 공안망 등 5대 국가기간전산망사업 추진에 대한 세부지침이 처음 마련된 것은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가 85년 5월 청와대에 보고한 「국가기간전산망 중간보고 및 행정전산망 추진계획(안)」에서였다. 87년부터 본격 추진된 국가기간전산망사업의 직접적인 단서가 된 이 계획안에는 각 전산망에 대한 망별 사업목표와 중점 추진사항, 추진전담기관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었다. 행정망의 경우는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통신, 운영 등 부문별로 소요되는 예산 추정액이 나름대로 구체성을 띠었고 전산화에 따른 예산절감효과도 분석돼 있었다.
이에 앞서 정부 공식문건에서 국가기간전산망사업 추진계획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83년 12월 정보산업육성위원회가 청와대에 보고한 「국가기간전산망 계획(안)」에서였다.
각계 2백여 기관 및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작성된 이 계획안은 5대 국가기간전산망을 구성 운영하는 목적에 대해 「국가 전체의 투자대비 효과를 최대화하고 국내 정보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5대 망사업 추진 근거가 바로 이 문구 하나에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계획안은 또 5대 망에 대한 망별 구성과 포괄적인 운영계획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이 계획은 나중에 여러번의 보완을 거쳐 종국에는 원형을 거의 잃어버리긴 했지만 5대 국가기간전산망사업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대내외에 공식화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국가기간전산망 계획(안)」 문건 기초작업에 참여했던 체신부 소속 Y씨의 회고다.
『사실 이 문건은 기존의 몇몇 자료와 소관부처의 아이디어들을 모아 만든 페이퍼워크 차원이었습니다. 이해가 부족했던 국방망의 경우 구체적인 설명없이 「주관부처는 국방부」 하는 식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문건이 나중에 구체적인 계획안 작성 때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전산망사업 추진 원칙과 기관별 역할을 제시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입니다. 예컨대 전산망 이용자 입장에서 정부부처나 기관은 소관업무 개선에 중점을 두고 전산망 설치나 운영 등 기술사항은 별도의 전문기관이 책임지도록 한다는 조항이었죠.』
정보산업육성위원회는 같은 해 7월 「국가기간전산망 계획 관련사항」(7월)을 보고한 데 이어 각계로부터 「국가기간전산망 구성, 운영을 위한 제안」 의견청취 과정(10월)을 거친 뒤 이를 토대로 12월 마침내 「국가기간전산망계획(안)」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국가기간전산망」이라는 용어 자체가 처음 등장한 것도 이들 문건 가운데 하나인 「국가기간전산망계획 관련사항 보고」에서였다. 이 문건 제1항에는 「국내 전체 전산화체계는 종국적으로 국방망, 정보망, 행정망(일반행정, 금융, 교육, 기술정보 등)이 포함된 국가기간전산망을 중심으로 하여 구성, 연결하는 것이 바람직함」이라는 문구가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국가기간전산망」이라는 단어의 효시였다. 다시 Y씨의 회고다(Y씨는 당시 정보산업육성위원위 산하 실무위원회 위원이었다).
『바로 이전의 문건에서는 「정부전산화」라는 단어를 사용했었죠. 사실 정부전산화라는 말은 너무 밋밋한데다 당시까지 정보산업을 주도하던 과기처식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컴퓨터와 통신의 결합을 주장해온 체신부의 입장을 제가 대변해서 전산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됐던 겁니다.』
「국가기간전산망계획(안)」에 대한 첫 보완은 6개월 뒤인 84년 6월 대통령비서실이 중심이 된 「국가기간전산망 계획 추진보고」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서는 5대 망 사업추진에 대한 포괄적이고 핵심적인 지침이 마련됐다. 5대 망이 행정망, 금융망, 교육연구망, 국방망, 공안망으로 최종 압축된 것도 이 보고서에서였다.
이 보고서는 또 처음으로 5대 망에 대한 범위를 정해 놓고 있었는데 행정망은 정부 각 원부처청과 지방행정기관 및 기타 공공기관이 포함돼 있었다. 또 국방망은 국방부와 육해공군 및 병무청을, 당초 정보망에서 명칭이 바뀐 공안망은 안기부와 치안본부 및 검찰을 각각 대상으로 했다. 새로 추가된 금융망은 은행과 농협 및 우체국을, 교육연구망은 대학과 연구소 등을 각각 범주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 보고서 내용은 청와대가 5대 망사업 추진을 직접 관장하겠다는 대목에서 정부부처나 산하 관련기관에 큰 파문을 던졌다. 청와대가 당초부터 염두에 두었던 분야는 행정망과 금융망이었다. 행정망의 경우 각 부처, 산하 지방행정기관, 공공기관 등 관련 기관이 부지기수인데다 업무 자체도 이질적인 요소가 많아 업무조정에 난항이 예상되던 터였다. 금융망 역시 마찬가지여서 20개가 넘는 은행 등 금융기관의 상호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분야였다. 청와대는 바로 이같은 분야에 대한 조정과 지원을 직접 챙기겠다는 것이었다.
금융망추진위원회 자문회의 위원이었던 과기처 J씨의 회고.
『5대 망 사업은 5공출범 직후부터 구상돼왔습니다. 정권 안보나 정통성 확보 차원에서 이 사업이 추진된다는 애기가 더 설득력 있게 퍼져 있었죠. 청와대의 직접 조정 의지에 행정망과 금융망 관련 기관에서 긴장했던 것은 당시 강압적인 청와대의 스타일을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각기관들이 스스로 업무조정을 하지 않을 경우) 청와대의 개입은 불보듯 뻔한 것인데 자칫 대규모 조직개편이나 인사이동과 같은 불똥으로 까지 튈 우려가 다분한 상황이었던 거죠.』
청와대가 5대망 사업 추진에 대한 조정과 지원을 위해 만든 기구가 국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였다. 위원장은 기존 정보산업육성위원회와 마찬가지로 대통령비서실장이 맡았다. 위원은 소관부처 차관과 청와대 정무2, 경제, 교문수석 등이었다. 한편 앞서 언급했던 85년5월의 「국가기간전산망 중간보고 및 행전전산망 추진계획(안)」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 보고서 명칭에서도 나타나듯 행정망에 대한 비중과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는 사실이었다. 5대 망에 대한 각각의 비중을 동등하게 다뤘던 이전 문건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었다. 이것은 행정망이 다른 4개망에 대해 규모면이나 전산화에 대한 상징효과 면에서 행정망이 앞도적인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행정망에 대한 중요성은 이 망을 구축하는데 소요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및 통신망에 대한 표준규격과 기술 국산화가 미치는 파급효과 때문이었다. 즉 행정망 사업에는 엄청난 규모의 장비와 소프트웨어 개발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정보산업 발전의 사활이 달려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행정망에서 정해진 각종 표준은 나머지 4대망 사업에도 그대로 적용될 판이었다.
실제 5대망 가운데 가장 먼저 사업이 추진된 것도 87년 행정망이었다. 나머지 4개망은 88년과 89년 2년 동안 준비기간을 거쳐 90년부터 본격적인 삽질이 시작됐던 것이다.
행정망의 경우 본격적인 사업 시작은 「전산망 보급 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발표되는 87년1월부터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전산망조정위원회가 「다기능사무기기(워크스테이션) 보급계획(안)」을 내놓은 86년 1월부터라고 할수 있었다.
다기능사무기기란 일선 업무에 사용되는 개인용컴퓨터로서 전산망조정위원회는 이계획안에서 86년 3월부터 88년3월까지 2년동안 5천1백85대를 각급기관에 보급하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대당 2백10만원으로 책정된 다기능사무기기의 관납을 놓고 정보산업계가 바짝 달아올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전산망조정위원회는 이 계획안에서 정작 중요한 것에 대한 언급을 얼버무리고 있었다. 당장 필요한 다기능사무기기 구입등 행정망 사업추진에 소요되는 자금 지원에 대한 부문을 명확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5대 국가기간전산망 사업 추진 계획이 처음부터 졸속으로 만들어졌다는 비난이 시작된 것은 바로 여기서부터였다.
<서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