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개성시대. 글꼴에 개성을 입히자』
컴퓨터를 이용한 문서작성및 출력이 일반화되면서 컴퓨터 활자인 폰트(글꼴)분야에서도 개성을 강조한 디자인 경쟁이 한창이다.
폰트의 사전적인 의미는 같은 글자체와 같은 크기로 이루어진 활자 한벌을 말하는 데 우리말로는 글꼴이라고 해석된다.
그동안 한글의 대표적인 글꼴로는 신문이나 일반서적의 본문체로 쓰이는 명조체, 고딕체등 네모틀을 벗어나지 못한 정형화된 글꼴이 전부였으나 얼마전부터 산돌체, 안상수체, 윤체 등 독특한 개성을 지닌 다양한 글꼴들이 속속 개발돼 컴퓨터 사용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이처럼 글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개성있는 글꼴을 창조하는 글꼴디자이너가 새로운 전문직업인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글처럼 멋있고 예쁜 글자는 아마 없을 거예요』
엘렉스컴퓨터 서체개발팀에서 근무하는 김준희(26)씨는 한글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사는 올해로 경력 6년째인 글꼴디자이너다.
김 씨는 대학시절 글꼴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르바이트로 이 일을 시작했다가 글꼴디자이너가 됐지만 이 직업에 큰 매력을 갖고 있어 결혼 후에도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글꼴 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위해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지는 않다.
글꼴 디자이너로 일하는 사람들은 주로 전문대나 4년제 대학에서 시각디자인,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글꼴에 관심이 많고 디자인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라면 업체에서 기초부터 착실히 배우면 1∼2년내 글꼴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현재 국내에는 서울시스템, 한양시스템, 산돌글자은행, 윤디자인연구소, 태시스템서체, 소프트매직등 많은 글꼴 전문업체들이 있으며 한글과컴퓨터, 엘렉스컴퓨터등 웬만한 컴퓨터회사에서도 2∼3명씩의 글꼴 디자이너를 두고 있다. 또 요즘엔 인쇄매체뿐 아니라 방송, 비디오, 영화, 노래방 등의 화면 자막에도 다양한 글꼴을 요구하는 수요가 점증하고 있어 글꼴 디자이너는 전문직 중에서도 전망이 밝은 편에 속한다.
『남들이 볼 때는 매우 지루한 일 같지만 글꼴을 하나씩 만드는 작업은 아주 재밌습니다』
김 씨는 글꼴 디자이너가 갖춰야할 조건으로 재능보다는 성격이 일과 잘 맞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집중력을 갖고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작업해야 하므로 무엇보다도 차분한 성격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점에서 글꼴 디자이너야 말로 여성들에게 적합한 직업중의 하나라고 적극 추천한다. 결혼후에도 프리랜서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는 점도 김준희씨가 여성들에게 이 직업을 권하는 이유중의 하나다.
『좋은 글꼴을 만들기 위해선 늘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김 씨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등 다른 일을 할때도 새로운 글꼴에 대한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즉시 노트를 펴고 레터링작업을 한다. 또 틈만 나면 글꼴 관련 서적을 열독한다. 혹시 자신이 생각해 낸 글꼴을 다른 사람이 먼저 만들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새로 나온 글꼴 관련 서적은 빠짐없이 읽는다고 한다.
『한글은 영어의 알파벳과 일어의 가나와 달리 글꼴을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렵고 힘들지만 그 만큼 큰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알파벳이나 가나의 경우 1주일 정도면 한 벌을 쉽게 만들 수 있지만 제대로 된 한글 글꼴 한 벌을 만들기 위해선 1년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김준희씨는 한글 글꼴에 남다른 애착을 같고 있다.
김 씨는 최근 통신및 인터넷 사용자 확대에 부응, 한글 인터넷 글꼴 4종을 개발한 것을 비롯해 모두 1백여종의 글꼴을 개발하는데 참여했다. 엘렉스컴퓨터가 지금까지 공급한 2백여종의 글꼴 가운데 절반가량이 그녀의 손을 거친 셈이다.
『외국에서 만들어진 매킨토시가 국내 전자출판시장을 석권하고 이 만큼 많이 보급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양한 글꼴의 제공이라고 생각한다』고 서슴없이 말한 정도로 김준희씨는 글꼴 디자이너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엔젠가는 내 이름을 붙인 한글 글꼴을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김 씨는 모든 글꼴 디자이너와 마찬가지로 언젠가 윤체나 안상수체 처럼 자신의 이름을 내 건 글꼴을 만들어 보겠다는 다부진 포부를 갖고 있다.
<김종윤 기자>